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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손에 쥐고 억지로 웃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은 있다. 그런데 요즘 20대는 아예 그 자리에 처음부터 손사래를 친다. 구직자 10명 중 4명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단순한 건강 유행일까, 아니면 그 안에 더 깊은 심리가 숨어 있을까.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올해 20대 구직자 10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1.3%가 '음주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때 대학 새내기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던 술 문화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지연 만족 선호(delayed gratification preference)'와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에드워드 데시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이 외부 압력이 아닌 내부 동기로 행동을 선택할 때 심리적 안녕감이 높아진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Z세대의 금주는 바로 이 내부 동기, 즉 '나 자신이 원해서'라는 선택에서 비롯된다.
알코올은 뇌의 도파민 보상 회로를 자극해 일시적인 쾌감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이 효과가 반복될수록 기저 도파민 수준이 낮아져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해진다는 점이다. 켈리 맥고니걸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강사는 저서 '의지력 본능'에서 이를 '보상 약속의 덫'이라고 표현했다. 술이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 술 없이는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Z세대는 이 구조를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보 접근성이 높은 세대답게, 음주가 수면의 질을 낮추고 불안 수준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SNS를 통해 일찌감치 접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량의 음주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이며 '안전한 음주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음주문화 변화의 결정적 전환점은 코로나19였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약 2~3년간 집합 금지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당시 대학에 입학한 세대는 '부어라 마셔라' 식의 술 문화를 경험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습관 형성 단절(habit formation disruption)'이라고 본다.
제임스 클리어 행동 심리학 작가는 저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행동 반복의 맥락이 사라지면 습관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선배가 잔을 채워주는 MT, 동기들과 어울리는 술자리, 교수와 함께하는 뒤풀이. 이 모든 '음주 촉발 맥락(drinking cue)'이 코로나로 사라졌고, Z세대의 뇌는 처음부터 술을 '당연한 것'으로 학습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단주 경험이 인지 기능과 감정 조절 능력을 실제로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이 2018년 성인 8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달 금주 실험에서 참가자의 71%가 수면의 질이 개선됐다고 답했고, 58%는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Z세대는 이미 몸으로 이 효과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번지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운동은 완전한 금주가 아니라 '굳이 마셔야 할 이유가 없다면 안 마신다'는 태도를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의 핵심을 '집단 정체성의 재구성'에서 찾는다. 헨리 타지펠 전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사회정체성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속하고 싶은 집단의 행동 양식을 모방하고 내면화한다.
과거에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사회성 좋고 친화력 높은 집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Z세대 사이에서는 운동하고, 수면을 관리하고, 정신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 '멋진 사람'의 이미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술 마시지 않는 것이 '아싸'의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관리 능력의 증거가 된 것이다.
또래 압력(peer pressure)에 굴복해 마지못해 술잔을 드는 행동은 심리학적으로 '순응 편향(conformity bias)'에 해당한다. 그런데 Z세대는 이 순응의 방향 자체를 뒤집었다. 이제는 '왜 마셔?'라고 묻는 목소리가 '왜 안 마셔?'라는 목소리보다 커지고 있다.
Z세대는 역대 어느 세대보다 불안 수준이 높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심리학회(APA)가 2023년 발표한 '미국의 스트레스' 보고서에서 18~34세 응답자의 52%가 불안 증상을 경험한다고 답해 전 세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불안한 세대가 술 대신 무엇을 선택하고 있을까.
흥미롭게도 이들은 술 대신 운동, 명상, 심리 상담, 취미 활동을 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알코올이 감정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불안을 처리한다면, 이 세대는 감정을 직접 마주하고 조절하려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 중심 대처(emotion-focused coping)'에서 '문제 중심 대처(problem-focused coping)'로의 전환이라고 본다.
물론 모든 Z세대가 이런 방식으로 불안을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힘드니까 한잔하자'는 공식이 더 이상 이 세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술 없이도 연결되고, 술 없이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음주는 선택지의 맨 뒤로 밀려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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