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악플 영상 하나가 수십만 뷰를 넘긴다. 연예인의 실수를 포착하고, 자극적인 썸네일을 달아 올리면 댓글창은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저 사람 진짜 별로지 않아?'라는 생각 한 번쯤 해본 적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영상을 끝까지 보고 있었다면,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중국에서 팔로워 2020만 명을 보유한 인플루언서가 여배우에게 '수준 미달'이라는 악평을 퍼붓고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을 타깃으로 한 '사이버 렉카' 채널이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왜 우리는 남을 깎아내리는 콘텐츠에 이렇게 쉽게 끌릴까.
심리학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개념이 있다. 독일어에서 온 이 단어는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을 뜻한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나쁜 감정이 아니라, 인간 뇌의 보상 회로와 깊이 연결된 본능적 반응이다.
미나 시카라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1년 연구에서 사람들이 경쟁 집단의 실패나 망신에 노출됐을 때 뇌의 복측선조체, 즉 도파민 보상 회로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확인했다. 쉽게 말해, 누군가 창피를 당하는 장면을 볼 때 뇌가 일종의 보상 신호를 내보낸다는 것이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높다고 인식되는 유명인일 때 이 반응은 더 강하게 나타났다. 연예인의 추락을 담은 영상이 조회수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이버 렉카 콘텐츠가 위험한 이유는 '집단 동조 효과' 때문이다. 솔로몬 애시 미국 스와스모어대 심리학과 교수가 1951년 진행한 고전적 동조 실험에서는 피험자의 75%가 집단의 잘못된 판단에 최소 한 번 이상 따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댓글창에 악의적인 의견이 가득 찰수록, 개인은 자신의 판단보다 '다수의 분위기'에 편승하게 된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이 효과가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설명한 '몰개인화(Deindividuation)'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익명 집단 속에 섞였다고 느낄 때 평소에는 하지 않을 공격적인 행동과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악플 문화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심리학적 이유다.
거기에 알고리즘까지 가세한다. 자극적인 콘텐츠일수록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플랫폼은 그 영상을 더 많이 추천한다. 분노와 혐오가 클릭을 부르고, 클릭이 다시 분노를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정작 콘텐츠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의 구현자'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나쁜 연예인을 폭로한다', '팬들이 알아야 한다'는 식의 명분을 앞세운다. 앨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이를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해로운 행동을 고상한 명분으로 포장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심리적으로 방어하는 기제다.
중국에서 붙잡힌 인플루언서의 사례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그 구조는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악플 문화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비판과 폭로라는 그럴싸한 포장지 안에 금전적 이익과 관심 욕구가 숨어 있었을 뿐이다.
2022년 서울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국내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1.3%가 온라인에서 특정 유명인을 비난하는 게시물에 '공감' 또는 '좋아요'를 누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20대에서 이 비율은 57.6%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사이버 렉카 문화는 결국 소비자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클릭하지 않으면, 공유하지 않으면, 댓글을 달지 않으면 알고리즘은 그 콘텐츠를 밀어올리지 않는다. 개인의 작은 선택이 모여 미디어 생태계를 바꾸는 것이다.
물론 타인의 불행에 관심이 가는 심리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그 본능을 인식하는 것, 즉 '지금 내가 왜 이 영상에 끌리는지'를 한 박자 멈추고 생각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오늘 자극적인 악플 영상이 추천 피드에 떠오른다면, 클릭하기 전에 딱 3초만 멈춰보자. '이 영상을 보고 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 그 작은 질문 하나가 당신의 온라인 공간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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