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아이가 네 살인데 벌써 영어 학원을 보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는가. '옆집 아이는 벌써 한글을 뗐다더라',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마, 아빠의 마음을 파고든다. 이 불안이 아이를 학원 차에 태우고 플래시 카드를 들이밀게 만든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가 부모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영유아기 사교육이 과할수록 아이의 불안과 공격성이 오히려 높아진다는 것이다. 영유아 교사 10명 중 거의 10명이 '사교육이 과열됐다'고 답한 이 현실, 심리학은 무엇이라 말할까.
육아정책연구소가 2024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기에 주당 5시간 이상 사교육을 받은 유아는 불안, 위축, 주의산만, 공격성 등 문제행동 지수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사교육 횟수와 빈도가 늘어날수록 스트레스와 문제행동 수치도 함께 올랐다.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니라 용량-반응 관계, 즉 많을수록 더 나빠지는 패턴이 확인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발달심리학에서는 영유아기를 '놀이 기반 학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로 본다.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소아과학과 스튜어트 브라운 박사는 자유로운 놀이가 전두엽 발달, 정서 조절 능력, 사회적 유연성을 키우는 핵심 메커니즘이라고 수십 년에 걸쳐 주장해 왔다. 구조화된 수업 환경은 이 '놀이의 시간'을 빼앗는다.
아이의 뇌는 낯설고 통제된 환경에서 코르티솔, 즉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어른이라면 '힘들지만 참자'고 인지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세 살 네 살짜리 아이의 전두엽은 그 능력이 아직 미숙하다. 반복되는 스트레스 자극은 뇌의 편도체를 과민하게 만들고, 이것이 불안과 공격적 반응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영유아 교사의 97.1%가 '학습 사교육이 과열됐다'고 답했다. 현장에서 매일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들이 거의 전원 일치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여론조사 결과가 아니다. 아이들의 달라진 표정과 행동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목소리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발달적 부조화(developmental mismatch)'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이의 신경계 발달 속도와 외부에서 요구하는 학습 속도 사이의 간격이 벌어질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핀란드 헬싱키대 교육심리학과 야리 라블리 교수 연구팀이 2019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7세 이전의 정형화된 학업 교육이 장기적으로 창의성과 내적 동기를 오히려 낮춘다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부모들도 이 상황을 원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비교 불안(comparative anxiety)'이 작동하는 것이다. '남들도 다 하니까'라는 인식이 개인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집단 전체가 움직이는 현상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를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도 부른다. 실제로는 대부분이 이 상황을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다들 좋다고 생각하겠지'라고 오해하며 침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유아기에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심리학의 답은 명확하다. 바로 안정적인 애착과 자유로운 놀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아델 다이아몬드 교수는 201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실행 기능, 즉 집중력, 자기 통제, 인지적 유연성은 구조화된 수업이 아니라 자유 놀이와 따뜻한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한다고 밝혔다. 이 능력들이야말로 이후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을 예측하는 핵심 지표다.
레고를 조립하다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것, 친구와 모래를 쌓다 다투고 화해하는 것, 이불을 덮고 집을 만드는 것. 이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들이 아이의 뇌를 가장 효율적으로 발달시킨다. 어른의 눈에는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뇌 입장에서는 매 순간이 복잡한 문제 해결 훈련인 셈이다.
부모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도 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내 아이가 뒤처질 것 같다는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불안이 아이에게 투사될 때 아이는 '나는 지금 이대로는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캐럴 드웩 교수가 수십 년에 걸쳐 연구한 '성장 마인드셋' 이론에서도 부모의 압박이 아닌 과정에 대한 격려가 아이의 내적 동기를 살린다고 강조한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을 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바람이다. 그 마음이 틀린 게 아니다. 다만 방향이 때로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유아기 최고의 교육 환경은 부모가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있어주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불안한 표정을 아이는 고스란히 읽는다.
오늘 저녁 플래시 카드 대신 아이와 함께 마당이나 공원에 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 벌레를 들여다보고 구름을 가리키고 흙을 만지는 그 시간이 어떤 학원보다 먼저 아이의 뇌를 풍요롭게 채운다. 당신의 느긋한 미소 하나가, 오늘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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