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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좋아하는 연예인이 갑자기 '친일파 후손'으로 검색된다. 당사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인데, 손가락이 이미 팔로우 취소 버튼 위에 올라가 있다. 이 감정, 이상한 걸까?
음주운전, 학교폭력, 마약. 한때 연예인 리스크는 '본인이 저지른 일'에 한정됐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증조부의 친일 행적, 집안의 역사까지 대중의 판단 영역으로 들어왔다. 배우 하영의 사례가 촉발한 이 현상, 심리학은 어떻게 읽을까.
인간의 뇌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 단위'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도록 진화했다.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도덕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도덕 기반 이론'을 통해 인간이 배신, 불순함, 집단 위계에 대해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친일 문제처럼 '배신'과 '불순함'이 동시에 얽힌 사안에서 뇌의 혐오 반응은 특히 강하게 작동한다.
문제는 이 감정이 '당사자'를 향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오염 효과(contamination effect)'라고 부른다. 한 번 도덕적으로 오염됐다고 인식된 대상은 물리적·시간적으로 거리가 있어도 혐오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폴 로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1990년대 수행한 일련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히틀러가 입었던 스웨터'를 빨아도 입기를 꺼렸다. 조상의 이력이 후손에게 '오염'처럼 느껴지는 것도 같은 메커니즘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따지면 후손에게 조상의 책임을 묻는 건 논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 뇌는 감정이 먼저 반응하고, 논리는 나중에 따라온다. 하이트 교수는 이를 '도덕적 직관이 도덕적 추론을 이끈다'고 표현했다.
팬이 연예인에게 갖는 감정은 단순한 동경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고 부른다. 시청자나 팬이 미디어 속 인물과 실제로 교류하는 것처럼 친밀감을 느끼는 심리다. 도널드 호튼과 리처드 월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1956년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팬이 스타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 때 실제 인간관계에서 배신당한 것과 유사한 감정적 고통을 경험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연예인의 '세대 리스크'는 이 준사회적 관계에 균열을 낸다. 2022년 캐나다 맥매스터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성인 팬 5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좋아하는 스타의 도덕적 결함이 드러났을 때 팬의 자존감과 개인 정체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1.4%가 '내가 잘못된 사람을 지지했다는 수치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 수치심이 '거리두기'로 이어지고, 팬덤의 집단적 비난으로 증폭된다.
그 결과 팬들은 좋아했던 연예인을 빠르게 '악인'으로 재분류하게 된다. 이는 인지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뇌의 자기방어 기제다. 연구자들은 이를 '인지 부조화 해소'라고 설명한다. '내가 좋은 사람을 좋아했다'는 자기 인식을 지키기 위해, 대상을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연예인 리스크가 개인 일탈을 넘어 조상과 집안으로 번지는 현상은 SNS 알고리즘과 무관하지 않다. 키스 햄프턴 미국 럿거스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는 '도덕적 분노'를 다른 어떤 감정보다 더 빠르게 확산시킨다. 2023년 마이크로소프트리서치가 트위터(현 X) 게시물 2억 30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도덕적 분노를 담은 게시물은 평균 게시물보다 리트윗 비율이 17% 더 높았다.
도덕 감정이 콘텐츠 소비의 연료가 되는 구조 속에서, 대중의 시선은 점점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도덕적 감시의 확장'이라고 부른다. 한번 대중의 도덕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과거와 주변인, 심지어 혈연까지 소환된다. 제작사와 방송국이 긴장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 현상은 무조건 나쁜 걸까. 일부 심리학자들은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본다. 역사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판단이 개인의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공정함보다 감정적 배설에 가까워진다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솟구칠 때, 잠깐 멈춰서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다. '이 분노는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오염 효과가 만들어낸 감정인가.' 하이트 교수는 도덕적 판단에서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도덕적 겸손'이라 불렀다.
대중이 연예인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잣대가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 즉 태어난 집안과 조상에게까지 뻗어나갈 때,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 누군가를 강하게 비판하고 싶어질 때, '이 사람이 직접 한 일인가'라는 질문 하나만 더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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