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분명히 하루 종일 바빴고 몸은 천근만근인데, 막상 누우면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릿속은 오늘 못 끝낸 일, 내일 해야 할 일,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한 실수까지 바쁘게 돌아간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단순히 바빠서, 혹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회학자들은 물론 심리학자들도 한국인의 수면 문제 뒤에 훨씬 복잡한 심리적 구조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수면 심리학에서 불면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과각성(hyperarousal)'이다. 위험을 감지하거나 중요한 과제를 앞두었을 때 뇌가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이것이 만성화될 때다. 코트디부아르 출신 수면 연구자 니키 실버만 미국 하버드대 의학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만성 스트레스 환경에서 뇌의 편도체는 실제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도 경보를 울리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이 과각성 상태를 일상화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씨리얼이 사회학자 김찬호 연구자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지적됐듯, 한국은 '24시간 사회'다. 대리기사, 편의점, 배달 플랫폼까지 사회 전체가 밤낮 없이 돌아가면서 개인의 신경계도 '꺼짐' 버튼을 누를 타이밍을 잃어버린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2024년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8.3%가 '자다가 자주 깨거나 잠들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중 41.7%는 그 원인으로 '머릿속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를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인 중 상당수가 수면 부족을 알면서도 스스로 잠을 줄인다는 것이다. '보복성 취침 미루기(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라는 개념이 있다. 낮 동안 자신을 위한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이 밤에 유일하게 통제권을 되찾는 방식으로 잠을 미루는 심리다. '나 이거 돈 벌려고 하는 거야', '내 선택이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타 크루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0년 성인 2418명을 분석한 결과, 낮 시간 자율성이 낮을수록 보복성 취침 미루기 행동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특히 업무 강도가 높고 여가 시간이 부족한 집단에서 그 경향이 두드러졌다. 한국 직장인의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이 OECD 평균보다 약 200시간 이상 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패턴이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이 '작은 반란'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점이다. 수면 부족은 다음 날의 집중력과 감정 조절 능력을 저하시키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다시 밤의 과각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수면 부족이 쌓이면 단순히 피곤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매슈 워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신경과학 및 심리학과 교수는 저서에서
7시간 미만 수면이 지속되면 뇌의 전전두엽 피질 활동이 약해지면서 감정 조절
의사결정
공감 능력이 동시에 저하된다
고 밝혔다. 단 하루 이틀의 수면 부족도 혈중 코르티솔 수치를 37% 이상 끌어올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더 주목할 점은 '수면 부채(sleep debt)'의 특성이다. 주중에 부족하게 자고 주말에 몰아 자는 방식은 손실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 2019년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 연구팀이 성인 4만3880명을 13년간 추적한 결과, 주중 수면이 짧고 주말에 보충하는 패턴을 유지한 집단은 일관되게 충분히 잔 집단보다 사망 위험이 19% 높았다.
그런데도 많은 한국인이 수면을 '게으름의 상징'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4당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는 말이 수십 년 전부터 회자돼 왔다. 수면을 줄여야 성공한다는 문화적 신화가 깊게 뿌리내린 것이다.
다행히 과각성 상태의 뇌를 달래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수면 인지행동치료(CBT-I)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권하는 것 중 하나는 '수면 의식(sleep ritual)'을 만드는 것이다. 잠들기 30분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조명을 어둡게 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뇌가 '이제 꺼도 된다'는 신호를 학습하기 시작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수면을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으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국내 수면 전문가들은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낮 동안 10분이라도 진짜 쉬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밤 수면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잠을 못 자는 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오늘 밤 눈을 감기 전에 한 번만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