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생활 안 풀려서"…잘나가던 운동선수, 왜 극단적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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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선수 생활 안 풀려서"…잘나가던 운동선수, 왜 극단적 선택을 할까


올림픽 은메달, 세계선수권 금메달. 누가 봐도 성공한 운동선수의 삶이다. 그런데 시속 100km로 차를 몰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저렇게 잘나가는 사람이 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최근 일본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수영선수가 2026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고속 질주 중 자해를 시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줬다. 화려한 성취 뒤에 숨겨진 운동선수의 심리 붕괴,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무너뜨리는 걸까.



정체성의 함정: '나는 운동선수다'라는 말이 족쇄가 될 때


운동선수에게 '성적'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 그 자체다. 어릴 때부터 운동장에서 살아온 선수들은 '내가 좋은 성적을 내야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등식을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수행 기반 자존감(contingent self-esteem)'이라고 부른다. 자존감이 외부 성과에 완전히 종속된 상태다.


조셉 팰러디노 미국 인디애나대 심리학과 교수는 2021년 엘리트 운동선수 48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들의 68%가 자신의 정체성을 운동 성적과 동일시하고 있었으며,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우울감과 무가치감을 동시에 경험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경기에서 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실패했다'는 감각으로 증폭되는 것이다.


이번 일본 선수의 경우도 그랬다. 세계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냈지만 최근 국내 선발전에서 뜻대로 되지 않자 '선수 생활이 안 풀린다'는 말을 남겼다. 객관적 성취와 주관적 실패감 사이의 간극, 바로 그 틈새가 심리적 추락을 불러온다.



은퇴 공포와 실존적 위기: '운동 못 하면 나는 누구인가'


은퇴를 앞둔 선수, 혹은 부진이 지속되는 선수에게는 또 다른 공포가 찾아온다. '운동을 그만두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이다. 심리학자 브리아나 피넬 미국 오리건대 스포츠심리학과 조교수가 2023년 전직 올림픽 출전 선수 21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은퇴 후 첫 1년 안에 41.4%가 임상적 수준의 우울 삽화를 경험했다. 이는 일반 성인보다 2.3배 높은 수치다.


특히 위험한 시기는 '아직 현역인데 잘 안 풀리는' 순간이다. 은퇴도 아니고 전성기도 아닌, 어정쩡한 내리막의 시간. 이 시기 선수들은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며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깎아내린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의 부작용으로 설명한다. '그때처럼만 했어도', '그 부상만 없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의 반복이 현재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또한 심리적 고통을 드러내지 말라는 문화 속에서 자란다. '정신력'과 '근성'을 강조하는 훈련 환경은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자체를 약함으로 낙인찍는다. 결국 극한의 고통도 혼자 삭이다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터널 시야: 고통이 극심할 때 뇌는 출구를 보지 못한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순간, 사람의 뇌는 '터널 시야(tunnel vision)' 상태에 빠진다. 에드윈 슈나이드만 미국 UCLA 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개념으로, 극심한 심리적 고통 상태에서는 인지 범위가 극도로 좁아져 '이 고통을 끝내는 것' 외의 선택지가 보이지 않게 된다. 뇌가 문자 그대로 다른 가능성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2년 발표한 스포츠 선수 정신건강 보고서에 따르면, 엘리트 선수의 자살 충동 경험 비율은 비선수 또래 집단보다 35% 높았다. 그러나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는 비율은 오히려 27% 낮았다. 고통은 더 크고, 도움은 덜 구하는 역설적 구조가 위기를 심화시키는 셈이다.


다행인 것은, 터널 시야는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적절한 개입과 시간이 주어지면 뇌는 다시 다양한 선택지를 볼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다. 바로 그 '잠깐의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주변의 연결과 전문적인 도움이다.



운동선수의 마음을 지키는 법: 성적 말고 다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9년부터 엘리트 선수 정신건강 지원 가이드라인을 운영 중이며, 각국 올림픽 위원회에 전담 심리상담사 배치를 권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과학연구원이 선수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이용률은 여전히 낮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변화는 주변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선수 곁에 있는 코치, 팀 동료, 가족이 '오늘 기록이 어때?'가 아니라 '요즘 어때, 힘들진 않아?'라고 먼저 물어보는 것. 성과와 분리된 존재로서 그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 그 작은 질문 하나가 터널 속 사람에게 작은 빛이 되기도 한다.


만약 주변에 극심한 부진이나 좌절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연락해 보자. '요즘 많이 힘들겠다, 그냥 네 얘기 듣고 싶어서'라는 한 마디가, 누군가의 터널을 조금 넓혀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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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8-26 06: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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