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화면 너머로 날아드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일본 아이돌 출신 스키 선수 곤도가 대표팀 내 왕따와 SNS 악플로 자해 시도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두 번의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그에게 팬들은 '다음엔 사퇴하라'는 악플을 쏟아냈다.
이것이 단순히 연예계나 스포츠계만의 이야기일까. 우리 주변에도 익명의 비난 앞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 온라인 비난은 왜 이토록 깊은 상처를 남기는 걸까.
나오미 아이젠버거 미국 UCLA 사회신경과학연구소 교수는 2003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사회적 배제를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신체적 통증을 느낄 때와 동일한 전측 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라는 것이다. 뇌는 온라인에서 날아드는 '넌 자격 없어'라는 말을 실제 주먹에 맞는 것과 같은 수준의 위협으로 처리한다.
더 심각한 것은 반복성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일시적 위협에는 분비됐다가 사라지지만, 악플처럼 반복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공격 앞에서는 만성적으로 분비된다. 키르스틴 와인스타인 독일 콘스탄츠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사회적 거부를 경험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해마(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 용적이 평균 9.3% 줄어들었다.
곤도처럼 이미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황, 즉 부상과 낙마로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 쏟아지는 악플은 뇌의 방어 시스템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이중 취약성 가설(Dual Vulnerability Hypothesis)'이라고 부른다. 이미 상처가 난 곳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왜 사람들은 현실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인터넷에서는 거침없이 쏟아낼까. 존 슐러 미국 라이더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이 현상을 '온라인 탈억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로 설명한다. 익명성과 비가시성, 즉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내 얼굴도 안 보인다'는 조건이 갖춰지면 평소 사회적 규범이 억눌러온 공격성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거기에 '상대방의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화면 속 텍스트는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가린다. 내가 쓴 댓글이 누군가의 눈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가해자는 죄책감을 덜 느끼고, 심지어 자신이 '정의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까지 한다.
2023년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1.4%가 '온라인에서 상대방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강한 말을 쓸 수 있었다'고 답했다. 악플은 분노의 표현이기보다는 익명성이 허락한 심리적 면죄부에 가깝다.
곤도의 사례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악플을 쏟아낸 이들이 바로 그를 응원했던 팬들이라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팬덤 내 소유적 집착(Parasocial Ownership)'으로 설명한다. 팬은 스타와 실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지만, 오랫동안 감정적 투자를 해온 탓에 스타가 기대에 어긋났을 때 배신감을 느끼고 그것이 공격성으로 전환된다.
데이비드 겔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연구팀은 2021년 팬덤 연구에서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가 강할수록 스타의 실패에 대한 분노 반응이 2.7배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내가 그토록 응원했는데 왜 이 모양이냐'는 감정이 악플이라는 언어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 역설은 스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직장 동료에게 기대했다 실망하거나, 가까운 사람이 내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갑자기 냉담해지거나 거친 말을 쏟아본 적,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관계에서 느끼는 소유감과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도, 그 실망이 낳는 공격성도 커진다.
크리스틴 네프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 비난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비(Self-Compassion)' 실천을 권고한다. 악플을 받았을 때 '내가 정말 저 말처럼 형편없는 사람인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지금 이 순간 나는 고통받고 있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자신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네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 자비 수준이 높은 사람은 사이버불링 이후 우울 증상 회복 속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43% 빨랐다.
목격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악플 창에서 반박 댓글 하나, 응원 메시지 하나가 피해자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된다. 오늘 타임라인을 스크롤하다 누군가가 부당한 비난을 받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조용히 지나치지 말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남겨보는 건 어떨까. 화면 너머의 누군가에게 당신의 말이 구명줄이 될 수 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