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만 믿어" 했더니 17억 뜯겼다…NFL 스타 사칭 사기, 왜 우리는 속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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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오빠만 믿어" 했더니 17억 뜯겼다…NFL 스타 사칭 사기, 왜 우리는 속을까?


SNS에서 먼저 말을 걸어온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처럼 보였다. 화려한 저택, 고급 스포츠카, 그리고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린 NFL 프로 미식축구 스타라는 타이틀까지. 처음엔 그냥 답장을 한 것뿐인데, 어느새 마음을 열고, 믿고, 돈을 보내고 있었다.


영국 더선 등 다수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NFL 스타 선수를 사칭한 일당이 여성 26명으로부터 총 17억 원을 가로챈 사건이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 여성들은 하나같이 '설마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겠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도대체 우리 뇌는 왜 이런 상황에서 이토록 쉽게 무너지는 걸까.



유명인 사칭이 통하는 이유: 후광효과가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심리학에는 '후광효과(Halo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의 두드러진 긍정적 특성을 갖고 있을 때, 그 사람의 다른 모든 특성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지적 편향이다. 유명 스포츠 스타라는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성실함', '능력', '신뢰성'이라는 후광을 뒤집어씌운다.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지 확인하기도 전에, 뇌가 먼저 믿음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리처드 와이즈먼 영국 허트퍼드셔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기 피해 연구에서 '사기꾼은 피해자의 비합리성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 심리를 이용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의 일당이 고급 저택과 스포츠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것도 바로 이 후광효과를 의도적으로 설계한 전략이다. 럭셔리한 외형이 신뢰의 증거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 편향이 지능이나 학력과 거의 무관하다는 점이다. 후광효과는 뇌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름길, 즉 '휴리스틱(Heuristic)'에 해당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작동한다. 피해자를 어리석다고 탓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시각인지를 이 연구들은 명확히 보여준다.



온라인 친밀감의 함정: 디지털에서도 애착은 진짜로 느껴진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피해 여성들이 단순히 돈을 송금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관계를 믿었다는 점이다. 사기꾼들은 수천 통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라 불리는 수법을 구사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으로 인한 피해액은 연간 13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가 SNS와 메시징 앱을 통해 시작된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심리학 개념이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다. 미디어 속 인물, 혹은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소통하는 상대와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어도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크리스티나 레지노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심리학과 연구팀은 온라인에서 하루 30분 이상 메시지를 주고받은 상대에 대해 뇌가 실제 대면 관계와 유사한 수준의 옥시토신을 분비한다는 연구 결과를 2022년 발표했다. 뇌는 스크린 너머의 관계와 눈앞의 관계를 구별하지 못한다.


사기꾼들은 이 점을 정교하게 파고든다. 매일 아침 안부를 묻고, 피해자의 고민을 들어주고, 특별한 날을 기억해준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피해자의 뇌 속에서 상대는 점점 더 '진짜 관계'로 굳어진다. 그리고 그 관계를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돈을 보내게 만드는 최후의 방아쇠가 된다.



왜 '이상하다'는 느낌을 무시했을까: 인지 부조화와 확증 편향


피해자들 대부분은 사후에 '중간에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도 왜 멈추지 못했을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설명한다. 한 번 믿기로 결심하면, 뇌는 그 믿음에 반하는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걸러내고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 수집한다. '직접 영상통화를 안 하는 건 바빠서겠지', '돈을 요구하는 건 일시적인 사정이 있어서겠지' 하는 식으로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레온 페스팅거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1957년 처음 제안한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상충되는 정보를 접했을 때 정보를 바꾸기보다 믿음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미 감정적으로, 그리고 금전적으로 투자한 관계일수록 이 방어기제는 더 강하게 작동한다. 손실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 즉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까지 겹치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심리 구조가 피해자를 고립시킨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말해도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되고, 사기꾼을 더 강하게 신뢰하는 역효과가 생긴다. 전문가들은 이를 '접종 이론(Inoculation Theory)'으로 설명하는데, 외부의 경고가 오히려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면역 반응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사칭 사기에서 나를 지키는 법: 의심은 무례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첫 번째 원칙은 '느린 신뢰'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는 시간과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쌓여야 한다. 온라인에서 처음 만난 상대가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친밀감을 표현하고, 어떤 형태로든 금전이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면, 이는 '러브 바밍(Love Bombing)'이라 불리는 전형적인 사기의 초기 신호다. 의심하는 것은 무례한 게 아니라, 지극히 건강한 자기보호 본능이다.


두 번째는 '오프라인 검증'이다. 아무리 오랜 온라인 관계라도, 영상통화 거부나 직접 만남 회피가 반복된다면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구글 이미지 역검색, 공식 소속팀 SNS 확인 등 간단한 검증만으로도 사칭 여부를 상당 부분 걸러낼 수 있다. 주변의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그 관계를 이야기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제3자의 시선은 내가 놓친 '이상한 신호'를 가장 빠르게 포착한다.


SNS 속 화려한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해서, 당신이 특별히 선택받은 게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 먼저 다가온 관계일수록, 조금 더 천천히 믿어도 늦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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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8-30 08: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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