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뉴스 기사 하나를 읽다가 댓글창을 펼쳐봤다. 순식간에 혈압이 오른다.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인다. 하지만 잠깐, 그 댓글을 쓴 게 정말 '사람'이었을까?
최근 한 법률 전문 유튜브 채널이 공개한 영상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언급됐다. 국내 댓글창과 SNS 커뮤니티에서 우리가 격렬하게 싸웠던 상대 중 일부가 실은 외국 여론 공작 세력이나 자동화 봇(bot)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분노는 진짜였는데, 적은 없었던 셈이다.
인간의 뇌는 위협을 감지하는 데 탁월하다. 특히 자신이 속한 집단이 공격받는다고 느낄 때 편도체(amygdala)가 즉각 활성화되며 강렬한 분노 반응을 유발한다. 문제는 이 반응이 온라인 텍스트 앞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조나 베릴리언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2022년 연구에서 온라인 자극에 의한 편도체 반응이 실제 대면 위협 상황과 신경학적으로 거의 동일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더 무서운 건 '내집단-외집단 편향(in-group out-group bias)'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를 자동으로 적대 집단으로 분류하는 인지 패턴인데, 이 편향이 작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2초에 불과하다. 댓글 한 줄을 읽고 분노가 치밀기도 전에 뇌는 이미 그 사람을 '적'으로 낙인찍어버린 것이다.
만약 그 댓글이 실제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생성한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적을 향해 진짜 감정을 소진한 셈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허수아비 공격(straw man fallacy)'의 감정적 버전으로 설명한다.
중국 런민대 연구팀이 2013년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게시물 70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분노 감정을 담은 콘텐츠는 슬픔이나 기쁨을 담은 콘텐츠보다 최대 6배 빠르게 확산됐다. 분노는 SNS 알고리즘이 가장 사랑하는 감정이다. 참여율이 높고, 공유가 폭발적이며,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리기 때문이다.
로저 둘바스테어 미국 MIT 미디어랩 연구원은 2018년 트위터 허위정보 확산 실험에서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70% 더 많이 리트윗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 핵심 요인이 바로 '놀라움'과 '분노'였다. 자극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콘텐츠일수록 확인 없이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댓글창에서 느끼는 분노는 상당 부분 플랫폼 알고리즘이 설계한 환경의 산물이다. 내가 화가 난 게 아니라, 화가 나도록 설계된 공간 안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극소수에 불과한 의견이 마치 광범위한 여론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한다. 사람들은 댓글창의 극단적 의견을 보며 '이게 다수의 생각이구나'라고 착각하고, 반대로 자신의 온건한 생각을 침묵시킨다. 클리포드 나스 미국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 현상이 실제 사회 갈등 수준을 실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인식하게 만든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가장 무거운 대가는 사회적 신뢰의 하락이다. 2024년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22.7%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여론 양극화와 허위 갈등 노출이 이 수치를 끌어내린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내가 화를 낸 상대가 봇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의 분노가 진짜라면, 그 분노를 소비하는 방식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를 제안한다. 분노가 치밀 때 '이 감정이 나에게 지금 어떤 정보를 주는가'라고 스스로 질문하는 훈련이다. 제임스 그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 기법을 꾸준히 연습한 집단은 온라인 자극에 대한 충동적 반응이 34% 감소했고, 전반적인 정서적 안녕감도 높아졌다.
오늘 댓글창이 유독 분노스럽게 느껴진다면, 잠깐 창을 닫아보자. 그 분노가 진짜 사람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설계한 시스템이 당신의 뇌를 자극한 것인지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확인하지 않은 채 반응하는 것, 그게 알고리즘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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