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그 사람에 대해 처음 안 좋은 소식을 접했던 그 순간을 떠올려보자. 뉴스 헤드라인 한 줄, 짧은 영상 클립 하나. 그게 전부였는데도 그 이후로 그 사람이 예전과 같이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응원했던 팬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 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네티즌들은 '이미지 회복이 쉽지 않다'고 꼽은 연예인들의 이름을 나란히 올렸다. '사과해도 이미 늦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왜 우리 뇌는 한 번 형성된 부정적 인상을 이토록 오래, 깊이 붙들고 있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같은 강도의 정보라도 긍정적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를 훨씬 강하게, 오래 기억하도록 설계돼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심리학과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가 200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뇌가 부정적 사건을 처리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 반응의 강도는 동일한 긍정적 사건에 비해 평균 3배 이상 강하게 나타났다.
진화적으로 보면 이 편향에는 이유가 있다. 위험을 빠르게 감지하고 기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호랑이에게 한 번 물린 기억은 평생 남아야 했고, 덕분에 인류는 살아남았다. 문제는 그 정교한 생존 시스템이 연예인 스캔들 기사를 읽을 때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연예인이 공들여 쌓아온 수십 편의 작품, 수백 번의 선행보다 단 한 번의 논란이 훨씬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긍정적 정보 열 개가 부정적 정보 하나를 상쇄하지 못하는 셈이다.
일단 부정적 인상이 자리를 잡으면, 우리 뇌는 그 인상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골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영국 서식스대 인지심리학과 피터 웨이슨 교수가 1960년대 실험을 통해 처음 체계적으로 규명한 이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캔들 이후의 대중 반응이 이 전형적인 패턴을 따른다. 당사자의 과거 인터뷰가 재조명되고,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넘겼던 행동들이 갑자기 '의심스러운 증거'로 재해석된다. 온라인에서 '옛날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는 댓글이 넘쳐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 감각이 강화된 것은 논란 이후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리 로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특정 인물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생긴 후에는 동일한 행동도 '나쁜 의도'로 해석될 가능성이 최대 68% 높아진다. 사과문도 마찬가지다. 진심이 담겨 있어도 '보여주기식'으로 읽히고, 침묵을 지켜도 '반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개인의 뇌만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도 문제다.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이상하게 본다'는 사회적 신호를 감지하면, 자신의 판단을 그 방향으로 맞추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를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의 원리라고 하며,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가 저서 '설득의 심리학'에서 상세히 분석한 바 있다.
SNS 시대에 이 현상은 폭발적으로 증폭된다. 알고리즘은 부정적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더 넓게 퍼뜨리고, 분노와 실망을 표현하는 게시물은 공감과 공유를 훨씬 많이 받는다. 2023년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연구팀이 트위터 데이터 3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부정적 감정이 담긴 콘텐츠는 긍정적 콘텐츠보다 6배 더 빠르게 확산됐다.
결국 논란에 휘말린 연예인은 개인의 실수를 넘어 집단의 기억 속에 각인된 하나의 '상징'이 된다. 그 상징을 지우려면 단순한 사과문 하나로는 역부족이다. 대중의 집단 기억은 개인의 노력보다 훨씬 느리게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번 무너진 이미지는 정말 되돌릴 수 없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방향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심리학과 다허 켈트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대중이 이미지 회복을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얼마나 빨리 사과했는가'가 아니라 '그 이후 행동이 얼마나 일관되게 달라졌는가'였다. 말이 아닌 행동의 누적이 뇌의 인상을 서서히 덮어쓴다는 것이다.
시간도 중요한 변수다. 뇌과학 연구들은 부정적 기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적 강도는 약해지되, 사실 자체는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잊히는 것'이 아니라 '덜 아프게 기억되는 것'으로 바뀌는 셈이다. 이 과정에는 평균 2년에서 5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당신도 혹시 오래전 누군가에 대한 실망을 여전히 품고 있진 않은가. 그 판단이 온전히 내 생각인지, 아니면 뇌가 만들어낸 편향의 결과인지 한 번쯤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타인에게도,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에게도, 조금 더 넉넉한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것이 우리 뇌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진실을 보게 해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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