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채 발견" 불안 번지자 호신용품 품절…공포가 우리 행동을 바꾸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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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숨진 채 발견" 불안 번지자 호신용품 품절…공포가 우리 행동을 바꾸는 이유


밤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고, 이어폰을 한쪽만 꽂고,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걷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사회적 공포 전염'의 영향 아래 있는지 모른다.


최근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과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이 확산되면서 호신용 스프레이와 호루라기가 온오프라인에서 잇따라 품절되고 있다. 뉴스 속 사건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당장 무언가를 손에 쥐어야만 안심이 될 것 같은 이 감각, 심리학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공포는 전염된다: 뉴스 하나가 수백만 명의 뇌를 바꾼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대리 공포(vicarious fear)'라고 부른다. 내가 직접 위험에 처하지 않았더라도 타인의 위험 경험을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 뇌의 편도체(amygdala)가 실제 위협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나 스타르 미국 보스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2023년 연구에서 미디어를 통해 범죄 뉴스에 반복 노출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개인 위험 인식 점수가 평균 41% 더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공포 반응이 매우 비선형적으로 퍼진다는 점이다. 실제 범죄 발생률이 줄어들어도 미디어 노출 빈도가 늘어나면 체감 위험도는 오히려 상승한다. 폴 슬로빅 미국 오리건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이를 '위험 인식의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으로 설명한다. 뇌가 '얼마나 자주 떠오르는가'를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즉 뉴스 피드에서 강력범죄 기사를 하루에 열 번 접하면, 우리 뇌는 강력범죄가 하루에 열 번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느낌이 실제 구매 행동으로 이어진다.



호신용품을 사는 심리: 통제감을 되찾으려는 본능


품절 대란의 심리학적 핵심은 사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 회복에 있다. 앨버트 밴듀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이 개념은, 인간이 위협을 감지했을 때 단순히 두려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손에 쥐는 행위는 실질적인 방어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 상황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와 맞닿아 있는 개념이 '안전 행동(safety behavior)'이다. 인지행동치료(CBT) 분야에서 자주 다뤄지는 이 개념은,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단기적으로 안심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호신용품 구매, 야간 외출 자제, 이어폰 한쪽만 끼기 같은 행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단기적으로는 불안을 낮춰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세상이 위험하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역설적 효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 호신용품을 살수록 일시적으로는 안심이 되지만 그 행동 자체가 뇌에 '지금 세상은 위험하다'는 신호를 반복해서 보내게 된다. 불안이 불안을 먹고 자라는 구조다.



집단 공포의 파동: '나만 느끼는 게 아니다'라는 착각의 힘


SNS와 커뮤니티에서 '나도 무섭다', '호신용품 샀다'는 게시글이 쏟아질수록 공포는 더욱 강력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효과라고 부른다. 로버트 치알디니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타인의 행동이 '올바른 행동'의 기준점이 된다고 설명한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호신용품을 사고 있다면, 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집단적 위기 서사'가 더해지면 공포는 더욱 빠르게 확산된다.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분당 흉기 난동 이후에도 유사한 호신용품 품절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조용진 서울여자대학교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집단이 같은 공포를 공유하면 개인의 방어 반응이 사회적 행동으로 증폭된다"고 설명한다. 혼자 느끼는 두려움은 참을 수 있어도, 모두가 두려워하는 세상에서 혼자 태연하기는 더욱 어렵다.


결국 품절이라는 현상 자체가 다시 공포를 자극하는 신호가 된다. '다들 살 정도면 정말 위험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더 많은 사람을 구매로 이끄는 것이다.



공포와 함께 사는 법: 불안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먼저 '정보 다이어트'를 제안한다. 하루에 뉴스를 확인하는 횟수를 정해두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회(APA)가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스를 하루 2회 이내로 제한한 집단은 무제한 노출 집단보다 불안 수준이 평균 28% 낮게 측정됐다. 공포를 일으키는 정보를 완전히 차단하는 게 아니라, 소비하는 양을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불안한 감정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정도 일에 왜 이렇게 무섭지'라며 자신을 탓하는 것은 오히려 감정을 더 깊이 억누르게 만든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뇌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그 두려움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반복 노출된 정보가 만들어낸 과장인지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오늘 밤 뉴스를 보다가 불안해졌다면,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연락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이 위험하다는 메시지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안전함을 먼저 느껴보는 것이 가장 작은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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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9-03 0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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