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끊으려다 알코올 의존"…중독의 고백, 왜 우리는 쉽게 믿거나 의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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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진통제 끊으려다 알코올 의존"…중독의 고백, 왜 우리는 쉽게 믿거나 의심할까?


누군가 실수를 저지른 뒤 '사실 나는 중독과 싸우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순간 우리 안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일어난다. 측은한 마음이 밀려오는 한편, '지금 핑계 대는 건 아닌가'라는 의심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최근 미국 CBS 스포츠의 간판 해설가가 음주 운전으로 적발된 뒤 '선수 시절 진통제를 끊으려다 알코올 의존으로 이어졌다'는 입장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CBS로부터 무기한 출연 정지 처분을 받은 이 사건은 단순한 스포츠계 스캔들을 넘어 중독과 공감, 그리고 우리 뇌의 판단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심리학적 질문을 던진다.



고백은 왜 불편한가: 공감과 의심이 동시에 드는 이유


타인의 고통스러운 고백을 들을 때 우리 뇌는 즉각 두 가지 인지 경로를 동시에 가동한다. 감정을 처리하는 변연계는 공감 반응을 일으키지만, 전두엽은 '이 이야기가 전략적인가'를 따지기 시작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 편향(attribu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상대방의 행동을 상황 탓으로 볼지, 성격 탓으로 볼지를 순식간에 판단하는 인지 습관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뒤 나온 고백일수록 사람들은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에 더 쉽게 빠진다. 버나드 와이너 미국 UCLA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던 원인을 댈수록 비난 수위를 높이는 반면, 질병이나 중독처럼 통제 불가능한 원인을 제시하면 비난이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 두 반응이 뒤엉킨다는 점이다. '중독은 진짜 병이니 이해해야 한다'는 이성적 인식과,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하는 말 아닌가'라는 감정적 저항이 충돌한다. 이 불편한 긴장감이 바로 우리가 이런 고백 앞에서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다.



오피오이드에서 알코올로: 교차 중독의 실제 심리학


진통제 의존에서 알코올 의존으로 이어지는 패턴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교차 중독(cross-addiction)' 또는 '대체 중독(substitution addiction)'으로 설명된다. 뇌의 보상 회로, 특히 도파민 시스템이 한 물질에 익숙해지면 그 물질을 끊었을 때 다른 자극을 통해 같은 쾌감을 채우려 한다. 나타샤 데이비드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중독정신의학 연구팀이 2021년 오피오이드 의존 치료 환자 847명을 3년간 추적한 결과, 해당 환자 중 38.6%가 치료 과정에서 알코올 사용 장애를 새롭게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이 위험에 더 취약하다. 부상과 통증은 직업의 일부이고, 진통제 처방은 너무 쉽게 이뤄진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직 NFL 선수들의 오피오이드 처방 경험 비율은 일반 성인 남성보다 약 52% 높았다. 화려한 커리어 뒤에서 조용히 쌓여온 통증과 처방의 역사가 은퇴 이후 또 다른 중독으로 번지는 구조인 셈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중독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기만(self-deception)'의 일종으로 본다. '술은 진통제가 아니잖아'라는 합리화가 뇌의 경고 신호를 차단하고, 어느 순간 또 다른 의존이 완성된다.



우리가 중독자의 고백을 의심하는 진짜 이유: 낙인 심리


사람들이 중독 고백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는 '낙인 효과(stigma effect)'가 강하게 작용한다. 패트릭 코리건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2019년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61.3%는 중독을 '의지력 부족의 결과'로 인식했다. 중독이 뇌 질환이라는 과학적 합의와 달리,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 낙인 심리는 고백 타이밍과 맞물리면 더욱 강해진다. 사건이 터진 뒤에 나온 고백은, 설령 사실이라 해도 '변명'으로 해석되기 쉽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후 귀인 편향(post-hoc attribution bias)'이라고 부른다. 결과를 먼저 보고 나서 원인을 해석하기 때문에, 같은 고백도 사건 이전과 이후에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우리가 타인의 중독 고백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중독을 여전히 도덕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고백 이후가 더 중요하다: 회복을 바라보는 시선


심리학자들은 중독 회복 과정에서 주변의 시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켈리 존 하버드대 의과대학 회복연구소 소장은 2023년 발표한 연구에서, 회복 중인 중독자가 사회적 지지를 받는다고 느낄 때 재발률이 약 44% 낮아진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반대로 비난과 낙인에 노출될수록 회복 의지는 급격히 꺾인다.


중독 고백을 접했을 때 '진짜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려는 충동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판단의 칼날이 당사자의 회복 가능성을 얼마나 깎아내릴 수 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잘못한 행동에 대한 책임과, 중독이라는 질환에 대한 이해는 동시에 가능하다. 하나를 인정한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늘 누군가의 고백이 귀에 들어온다면, 잠시 판단을 미뤄보는 것은 어떨까. '저게 진짜일까'보다 '저 사람이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 그 작은 시선의 전환이,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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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9-04 08: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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