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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한때 개강 시즌이 되면 대학 앞 호프집과 영화관은 20대로 북적였다. 신입생 환영회, 과 MT, 친구들과의 즉흥 영화 나들이가 당연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강의실 불은 켜졌지만, 그 뒤를 따라야 할 청춘의 소비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최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20대가 외식, 모임, 여가 등 이른바 '선택 소비'를 줄이고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방식으로 생활 패턴을 전환하고 있다. 단순한 절약 트렌드일까?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의 이면에 훨씬 더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권정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원은 "이제는 자신이 합리적 소비자임을 보여주는 게 자랑거리가 됐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좋은 식당, 비싼 공연, 해외여행이 SNS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의 20대는 '현명하게 아끼는 나'를 공개적으로 인증하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으로 설명한다. 영국 브리스틀대 사회심리학과 앤리 타즈펠 교수가 정립한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함으로써 자아존중감을 유지한다. 지금 20대에게 '절약하는 집단'에 속한다는 감각이 자존감의 원천이 된 셈이다.
즉 소비 위축은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안 쓰는 것이 쿨한 것'이라는 새로운 집단 규범이 형성된 것이다. 호프집에 가지 않는 행동이 경제적 실패가 아니라 가치관의 표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경제적 측면만 보면 설명이 불완전하다. 취업 시기가 늦어지면서 생기는 심리적 변화가 소비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클라크대 발달심리학과 제프리 아넷 교수는 18세에서 29세 사이를 '성인 진입기(Emerging Adulthood)'라는 독립적 발달 단계로 규정했다. 이 시기의 핵심 과제는 정체성 탐색과 미래에 대한 방향 설정이다.
문제는 이 탐색이 불안 속에서 이루어질 때다. 취업 준비가 길어질수록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라는 감각이 강해지고, 어른처럼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죄책감을 유발한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가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는 불안과 뒤섞이는 것이다.
2023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대 청년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1.3%가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지출을 줄이고 싶다'고 답했다. 지갑이 닫히기 전에 마음이 먼저 움츠러드는 현상이다.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를 선택하는 행동을 단순히 비용 절감으로 보면 놓치는 게 있다. 이 행동에는 '사회적 비교 회피'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리언 페스팅거 교수가 제안한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느낄수록 타인과 비교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 한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외식이나 영화 관람은 자연스럽게 '저 친구는 취업했는데 나는', '저 친구는 돈이 있어 보이는데 나는'이라는 비교를 불러일으킨다. 혼자 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그 비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인 셈이다. 즐거워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혼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발표한 '트렌드 코리아' 보고서에서도 20대의 여가 활동이 그룹에서 개인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담겼다. 혼자 즐기는 콘텐츠 소비 비중이 3년 전에 비해 38.7% 증가했다.
소비 위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고립이 함께 진행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온라인 소통만으로는 뇌가 '진짜 연결됐다'는 신호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
특히 던바 교수는 20대가 '우정의 황금기'라고 강조한다. 이 시기에 형성된 관계가 이후 삶의 심리적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20대는 바로 그 황금기에 만남을 줄이고 있다. 아끼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미래의 관계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역설이다.
경제적 이유로 시작된 소비 위축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관계 회피가 성격으로 굳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이 '20대 소비 이탈'을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사회 심리학적 경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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