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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명절이 다가오면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시댁 용돈은 얼마, 친정 용돈은 얼마. 배우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공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는 왜 이 문제만 나오면 꼭 싸우는 걸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사연이 화제가 됐다. 남편은 연금을 많이 받는 자신의 부모에게는 용돈을 적게 주고, 연금이 없는 처가에 더 많은 돈을 쓰자는 아내의 제안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기적인 아내'라는 댓글과 '염치없는 남편'이라는 댓글이 팽팽히 갈렸다. 뉴스1 등 다수 매체가 이 사연을 보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갈등, 단순한 돈 문제일까?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 즉 자신의 가족과 혈연에 더 강한 유대감과 의무감을 느낀다. 헨리 타지펠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1970년대에 정립한 사회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지키려는 본능적 경향을 갖고 있다.
결혼을 하면 부부는 공식적으로 '한 가족'이 되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각자의 원가족을 내집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의 부모는 아무리 친해도 '외집단'으로 분류되기 쉽다. 명절 용돈 갈등은 결국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내집단 편향이 정면충돌하는 순간인 셈이다.
타지펠의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전혀 의미 없는 기준으로 집단을 나눈 뒤에도 자신의 집단에 훨씬 후한 보상을 배분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의 가족보다 자신의 혈육을 더 챙기고 싶은 마음, 이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용돈 갈등이 실제 금액보다 '의미' 때문에 더 격렬해진다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수전 피스크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금전적 자원 배분을 단순한 경제 행위가 아니라 관계의 우선순위를 드러내는 신호로 해석한다. '당신 부모보다 내 부모가 덜 중요하다는 거야?'라는 감정이 그 밑에 깔려 있다.
실제로 2022년 국내 가족상담 기관 가족사랑상담소가 성인 기혼자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명절 관련 부부 갈등의 68.3%가 금액 자체보다 '배우자가 내 가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심화됐다고 응답했다. 숫자 싸움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부모 봉양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자녀로서의 도리, 효도라는 강력한 문화적 코드와 연결돼 있다. 용돈 액수는 '나는 좋은 자식인가'라는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배우자가 그 금액에 제동을 걸면, 자신의 정체성이 공격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연 속 아내의 주장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인다. 형편이 나은 쪽에 덜 주고, 어려운 쪽에 더 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남편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공정성 지각의 비대칭성'으로 설명한다.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준을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반면, 유리한 기준에는 자연스럽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 입장에서 '연금을 받으니 덜 줘도 된다'는 논리는 자신의 부모를 평가절하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내 입장에서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배분이지만, 남편에게는 내 가족이 홀대받는다는 감각으로 다가온다. 같은 제안이지만 누가 말하느냐, 누구의 가족이 대상이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다.
여기에 '반응적 평가절하(Reactive Devaluation)' 효과도 더해진다. 상대방이 제안하면 무의식적으로 그 제안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심리적 기제다. 만약 아내가 아닌 제3자가 똑같은 제안을 했다면 남편의 반응은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갈등을 줄이려면 명절 직전이 아니라 평소에 '용돈 원칙'을 미리 합의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각자의 가치관을 나누고 기준을 세우면, 명절이 다가와도 갈등의 씨앗이 훨씬 줄어든다. 최성애 HD행복연구소 소장은 '부부 갈등의 핵심은 내용보다 방식'이라며 '상대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존중하는 언어와 태도가 금액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용돈 문제를 가족 전체의 재정 계획 안에서 함께 논의하면 내집단 편향의 충돌을 줄일 수 있다. '내 부모 대 네 부모'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예산'이라는 틀로 접근하면, 양측 모두 공동의 의사결정자로 느끼게 된다. 명절 전날 밤 싸우기 전에, 지금 이 기사를 배우자에게 살짝 보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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