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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 후 친구들과 술 한잔 걸치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 2030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를 줄이는 대신 편의점에서 가챠 뽑기를 하거나, 혼자 카페에 앉아 한정판 굿즈를 구매하는 데 돈을 쓴다.
단순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처럼 보이지만, 심리학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그 안에는 종종 채우지 못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최근 수년 사이 회식과 집단 소비 중심의 자영업 매출이 줄어든 반면 혼자 즐기는 취미나 수집 관련 지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회식이나 집단 중심의 소비가 많이 줄어들고 개인 취향 중심의 소비가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단순한 '취향 소비'로만 보지 않는다. 불확실한 결과를 기대하며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가챠나 랜덤 박스 구매는 '가변 보상 스케줄(variable ratio reinforcement)'이라는 심리 기제와 맞닿아 있다. 버러스 스키너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이 원리는,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고정 보상보다 훨씬 강한 반복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쉽게 말하면, 가챠를 뽑을 때마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구조 자체가 뇌를 계속 당기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자극이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보상이 끝나고 나면, 처음 소비를 부추긴 공허함은 그대로 남는다.
2023년 미국 심리학회(APA)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61%가 '원하는 만큼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특히 18세에서 34세 사이 젊은 층에서 이 비율은 79%에 달했다. 사회적 연결감이 낮을수록 보상 소비, 즉 기분을 달래기 위한 충동적 구매 빈도가 높아진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됐다.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에게는 '소속 욕구(need to belong)'가 기본적인 심리적 동기라고 설명한다. 회식 문화가 약해지고 함께 어울리는 자리가 줄어들면,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심리적 충동이 소비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챠 뽑기나 한정판 굿즈 수집이 단순한 취미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행위 자체가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캐릭터를 모으는 사람끼리 온라인에서 교류하고, 자신의 컬렉션을 SNS에 올리며 '좋아요'를 받는 과정은 사회적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체 경로가 된다.
많은 2030이 가챠 뽑기를 한 뒤 '또 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거나, 굿즈를 사고 나서도 허전하다고 토로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부르는 현상과 관련이 깊다. 소냐 류보머스키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캠퍼스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물질적 구매에서 얻는 행복감은 평균 2~3주 이내에 기준선으로 되돌아온다.
감정을 달래기 위한 소비는 일시적인 안도감을 주지만, 근본적인 외로움이나 소속감 결핍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소비가 반복될수록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지출 규모가 커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국내 20~30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2022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충동구매 경험자의 58.3%가 구매 직후 후회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고 혼자만의 소비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물건을 고르고 구입하는 행위 자체는 자기 표현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다만 소비 후 공허함이 반복된다면, 한 번쯤 '나는 지금 무엇을 채우려 하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소비로 채우려 했던 소속감을 실제 관계로 대체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진정한 친밀감을 형성하려면 상대방과 최소 50시간의 공유 경험이 필요하다. 온라인에서 굿즈 사진을 공유하는 것도 연결감을 주지만, 실제 얼굴을 보며 함께하는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바쁜 일상 속에서 갑자기 사람들과 어울리기란 쉽지 않다. 오늘 당장 가챠를 뽑고 싶은 충동이 든다면, 잠깐 멈추고 오래 못 연락한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 하나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요즘 어때, 오랜만에 생각났어'라는 한 줄이, 비어 있던 마음을 가장 저렴하게 채우는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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