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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경기 도중 심판이 선수에게 '모자를 똑바로 쓰라'고 지시했다. 신인 투수는 당황했고, 감독은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결국 양 팀 선수들까지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미국 매체 야후 스포츠가 보도한 MLB 경기 장면이다.
이 사건을 본 많은 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심판이 너무 권위적이다'는 쪽과 '규칙은 규칙이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심리학은 이 갈등 뒤편에서 훨씬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권위를 가진 사람은 왜 때때로 권력을 과잉 행사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장면에서 분노를 느끼는가.
다프나 오이서만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권위와 공감의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권력 위치에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사람의 뇌는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자동으로 낮춘다. 즉, 심판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이미 심리적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대처 켈트너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권력 역설(Power Paradox)'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공감과 협력으로 권위를 얻지만, 막상 권위를 쥐고 나면 그 공감 능력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2023년 성인 85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권력 위치에 있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타인의 불편함을 38% 낮게 인식했다.
이번 MLB 사건에서 심판이 신인 투수의 '모자 방향'을 문제 삼은 것도 이 맥락으로 읽힌다. 규칙의 적용 자체보다 적용하는 방식, 즉 공개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이 상대방을 얼마나 당혹스럽게 만드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경기를 보던 관중과 인터넷 반응이 즉각 심판을 비판한 데에도 심리학적 이유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발심리(Reactance)'라고 부른다. 누군가의 자유가 외부 권위에 의해 제한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보는 사람도 자신의 자유가 위협받는 것처럼 느끼며 분노한다.
스탠리 밀그램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의 복종 실험은 권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줬다. 사람들은 권위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복종하지만, 그 권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저항은 폭발적으로 커진다. 이번 사건에서 감독이 퇴장을 감수하면서까지 항의하고, 양 팀 선수들이 동참한 것은 바로 이 심리적 티핑포인트가 작동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규칙 자체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자를 똑바로 써야 한다는 규칙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지시가 전달된 방식, 타이밍, 그리고 그 이면에 담긴 권력의 냄새가 분노의 진짜 원인이었다.
감독이 퇴장당하자 선수들이 우르르 그라운드로 나온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집단 규범의 가시화'라고 설명한다. 평소라면 개인적으로만 불만을 품고 있던 구성원들이, 한 명이 공개적으로 행동하는 순간 '나도 저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신호를 받고 집단으로 움직인다.
솔로몬 애쉬 스워스모어대 심리학과 교수의 동조 실험에서도 확인됐듯, 집단 안에서 단 한 명의 이탈자가 생기면 나머지의 동조 압력은 급격히 낮아진다. 감독의 항의가 바로 그 한 명의 역할을 한 셈이다. 콜로라도 선수들뿐 아니라 상대 팀 세인트루이스 선수들까지 나섰다는 점은, 이 분노가 팀을 넘어 스포츠 공동체 전체가 공유한 감정이었음을 보여준다.
2019년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연구에 따르면, 집단 내에서 권위에 대한 저항이 집단적으로 표출될 경우 구성원들의 심리적 유대감과 신뢰가 평균 29%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함께 저항하는 경험이 역설적으로 팀을 더 단단하게 묶는다.
물론 심판의 역할은 쉽지 않다.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순간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이 곧바로 비판의 표적이 된다. 심판이 받는 심리적 압박은 선수 못지않다. 2021년 스포츠심리학 학술지 '저널 오브 스포츠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에서 프로 심판의 62.4%가 경기 중 만성적인 긴장 상태를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그 압박이 종종 권위의 과잉 행사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보상적 권력 행사'다. 불안하고 통제받는 느낌이 들수록, 사람은 자신이 쥔 권한을 더 강하게 행사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려 한다. '모자 방향'이라는 사소한 규칙이 경기 흐름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번진 이면에 이 심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권위는 강하게 쥘수록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히 내려놓을 줄 알 때 진짜 신뢰를 얻는다. 이는 심판석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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