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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하고 나면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데, 그렇다고 시끌벅적한 술자리는 영 내키지 않는다. 그냥 카페에서 각자 노트북 켜고 나란히 앉아 있으면 안 될까. 요즘 2030 세대가 딱 그렇게 모이고 있다.
술집 대신 카페나 도서관에서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바디 더블링(Body Doubling)' 모임이 조용히 퍼지고 있다. NH농협은행이 개인카드 고객 738만 명의 소비 데이터를 분석한 'NH트렌드+' 보고서에서도 이 경향이 뚜렷하게 포착됐다. 2030의 술자리 지출은 줄고, 카페·독서·취미 생활 지출은 늘었다.
바디 더블링이란 다른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집중력과 작업 효율이 높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원래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들의 치료 기법으로 활용되던 개념인데, 최근에는 일반 젊은 세대의 일상 모임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현상의 배경으로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심리를 꼽는다. 타인의 존재 자체가 각성 수준을 높여 개인의 수행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이론이다. 1898년 노먼 트리플릿이 자전거 선수들을 대상으로 처음 확인한 이 효과는, 100년도 더 지난 지금 카페 한쪽 구석에서 노트북을 펼친 20대에게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건 '함께 있음'과 '방해받음'이 다르다는 점이다. 바디 더블링 모임에서는 서로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같은 공간에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외로움이 줄고, 할 일에 집중이 된다. 혼자 있기는 싫고, 깊이 엮이기도 부담스러운 이 세대의 감정 지형을 정확히 짚어낸 방식이다.
로버트 서스톤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2년 성인 1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상호작용 이후 에너지 고갈을 느끼는 정도는 상호작용의 '강도'와 직결됐다. 술자리처럼 감정적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자리일수록 사후 피로감이 컸고,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저강도 연결 방식을 선호하게 됐다.
2030 세대는 학창 시절부터 SNS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에게 노출되며 자랐다. 이미 디지털 공간에서 사회적 자극을 과잉으로 받아온 세대인 만큼, 오프라인 모임에서까지 높은 강도의 상호작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다. 취미 생활이나 독서로 지갑이 향하는 흐름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배터리(Social Battery)'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마다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다르며, 배터리가 바닥난 상태에서 억지로 사교 활동을 이어가면 오히려 관계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바디 더블링은 이 배터리를 거의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혼자가 아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영리한 타협점인 셈이다.
마크 그라노베터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973년 발표한 연구에서 '약한 유대(Weak Ties)'의 힘을 강조했다. 깊고 긴밀한 관계보다 느슨하고 가벼운 연결이 오히려 새로운 정보와 기회를 가져다주고, 심리적 안정감에도 기여한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직업적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춘 연구였지만, 지금의 바디 더블링 현상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바디 더블링 모임 참가자들은 대체로 강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가벼운 인연이 많다. 그러나 이 느슨한 연결이 오히려 부담 없이 지속되고, 정서적 위안까지 제공한다. 깊이 알지 못해도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 자체가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이다.
리브 로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1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하루 동안 낯선 사람과 짧게 나눈 접촉, 예를 들어 카페에서 눈인사를 하거나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각자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전반의 행복감 지수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관계의 깊이보다 연결의 빈도와 질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우려의 시선도 있다. 진정한 친밀감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쌓이는데, 바디 더블링처럼 대화 없이 공존만 하는 방식이 관계의 깊이를 얕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강제된 친밀함이 오히려 관계를 망친다는 연구는 적지 않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압박(Social Pressure)'이라 부르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상호작용이 반복될 경우 관계 자체를 피하게 되는 회피 반응이 나타난다. 술자리의 분위기에 억지로 맞추고 집에 돌아와 진이 빠진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 자체를 멀리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디 더블링은 그 반대다. 서로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리이기에, 오히려 다음에 또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관계를 억지로 쌓으려 하지 않을 때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역설, 그것이 이 모임이 조용히 퍼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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