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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충분히 책임을 졌다'는 말과 함께. 그 순간 댓글창이 들끓었다. '뻔뻔하다', '반성이 없다', '저게 사과냐'. 우리는 왜 이 장면 앞에서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 걸까.
이혁재의 음주운전 입건과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 돈스파이크의 마약 출소 후 공개 행보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서' 화가 나는 게 아니다. 심리학은 이 분노 안에 훨씬 더 복잡한 인간 심리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심리학과 베노이트 모닌 교수는 2001년 발표한 연구에서 '도덕적 면허(Moral Licensing)' 개념을 제시했다. 과거에 선한 행동을 했다고 여길 때 이후의 나쁜 행동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심리다. 해외 봉사활동을 다니며 '충분히 책임을 졌다'는 이혁재의 발언은 이 효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이 면허가 본인에게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대중의 눈에는 반성이 아니라 면피로 보인다. 심리학적으로 행위자와 관찰자 사이에는 귀인(attribution)의 극심한 불일치가 발생한다. 본인은 '나는 충분히 했다'고 느끼지만, 바깥에서 보는 이들은 '책임이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대중의 분노는 계속된다. 사과와 책임의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에 따라 '완료'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멜빈 러너 미국 캔자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1960년대부터 '공정 세계 믿음(Just World Belief)' 이론을 연구했다. 인간은 세상이 공정하게 돌아간다고 믿고 싶어 하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강렬한 불쾌감과 분노를 경험한다.
연예인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카메라 앞에 복귀하는 장면은 이 믿음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지켜온 도덕적 기준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분노는 그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2019년 미국심리학회(APA)가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8.3%가 '공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진정한 사과 없이 복귀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반응인 셈이다.
앤드루 맥린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2021년 발표한 연구에서 사람들은 책임을 인정하는 표현 없이 유감만 표하는 '해명형 사과'를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 참가자의 74%는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문장이 포함된 사과문을 읽었을 때 오히려 더 강한 반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이혁재가 음주운전에 대해 '브레이크가 풀렸다'는 해명을 내놓은 것, 돈스파이크가 출소 후 반성보다 일상 복귀를 먼저 공개한 것은 모두 이 '해명형 사과'의 전형이다. 뇌과학적으로도 진정성 없는 사과는 편도체(amygdala)의 경계 반응을 오히려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뇌는 수만 년 진화 과정에서 타인의 진심을 감지하는 능력을 정교하게 발달시켜왔다. '미안하다'는 말 뒤에 자기 방어가 따라오는 순간, 그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 자기 보호로 해석된다.
단순히 유명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심리학자 수전 피스크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공인을 향한 도덕적 판단이 사회 규범 전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집단적 학습의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즉, 우리가 연예인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저 사람'을 심판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기준'을 재확인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런 집단적 감시는 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심리 기제이기도 하다. 다만 분노가 지나쳐 인신공격이나 마녀사냥으로 번질 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분노의 방향이 '행동의 책임'을 향해야지 '존재 자체의 말살'을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 당신이 누군가의 '뻔뻔한 복귀'에 화가 났다면, 그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한 번 돌아봐도 좋다. 나는 지금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그 분노 안에는 공정한 세상에 대한 나의 바람이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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