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이 붙은 제품을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블랙핑크 제니가 아디다스와 손잡고 선보인 첫 디자인 컬렉션이 공개되자마자 세계 곳곳에서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컬렉션 공개 직전 아디다스가 팔레스타인 문제와 연루된 논란이 불거지면서 해외 팬들 사이에서 '제발 아디다스를 떠나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팬들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스타를 향한 애정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 사이에서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 팬들의 뇌 속에서는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심리학에서는 이 상황을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른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실제 행동 사이에 충돌이 생길 때 느끼는 불편함과 불안이다. 레온 페스팅거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1957년 처음 개념화한 이후 수십 년간 수천 건의 연구로 검증된 이론이다.
팬들은 스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참여한 컬렉션을 구매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해당 브랜드의 행보가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느낀다. 이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는 순간 뇌는 즉각 경고 신호를 보낸다. 연구에 따르면 인지부조화 상태에서는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실제 물리적 고통에 반응하는 뇌 영역과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결국 뇌는 이 불편함을 빠르게 해소하려 한다. 불매운동에 동참하거나, 반대로 '브랜드 문제와 스타는 별개'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 과정은 철저히 심리적 자기방어 메커니즘이다.
팬이 스타에게 느끼는 유대감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헨리 타지펠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사회정체성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통해 자아를 정의한다. 블랙핑크 팬이라는 정체성은 그 사람의 자아 일부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와 연결된 브랜드가 도덕적 비판을 받으면 팬들은 단순히 제품 구매 여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자체가 위협받는 느낌을 받는다. 2022년 미국 텍사스대 마케팅학과 연구팀이 성인 팬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팬들의 71.3%가 '스타와 연계된 브랜드 논란을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 감정이 불매운동의 폭발력을 설명해 준다. 팬들이 '아디다스를 떠나라'고 외치는 것은 브랜드를 향한 분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흔들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 행동이기도 하다.
불매운동이 SNS를 타고 순식간에 확산되는 데는 '도덕적 감정의 전염성'이 작용한다. 조나단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심리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분노와 도덕적 혐오감은 기쁨이나 슬픔보다 3배 이상 빠르게 온라인에서 확산된다. 특히 도덕적 분노는 리트윗과 공유를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 중 하나다.
팬덤이 넓게 형성된 글로벌 스타일수록 이 파급력은 커진다. 제니처럼 해외 팬층이 두꺼운 아이돌의 경우 하나의 논란이 수십 개 언어권으로 동시에 퍼지면서 '도덕적 군중'이 빠르게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판단은 집단의 분위기에 쉽게 흡수되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동조 편향(conformity bias)'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상황에서 스타 본인이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것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강하게 형성된 집단 감정 앞에서 개인의 해명은 오히려 '프레이밍 효과'에 의해 더 부정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란이 지나간 뒤 팬들은 어떻게 다시 평온을 찾을까. 심리학자들은 '의미 재구성(meaning reframing)'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팬들은 스타의 행동을 새로운 맥락에서 해석하거나, 자신의 지지 방식을 조정함으로써 내적 균형을 회복한다. 실제로 노스캐롤라이나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팀이 2021년 팬덤 커뮤니티 1200명을 분석한 결과, 논란 이후에도 팬의 58.7%는 스타에 대한 지지를 유지했으며 그 과정에서 '스타와 브랜드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핵심 역할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 기대와 어긋나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 감정을 억누를 필요는 없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내 가치관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다만 집단의 분노에 휩쓸리기 전에 잠깐 멈추고 '내가 이 결정을 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라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는 건 어떨까. 나만의 답을 찾은 사람이 결국 가장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3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