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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서른여덟에 첫 아이를 낳은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스무 살에 낳았으면 아이한테 나쁜 엄마였을 것 같아.'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꽤 진지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요즘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마흔 즈음에 처음 아이를 품에 안는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산모 평균 출산 연령은 33.8세로, 2015년보다 약 1.5세 높아졌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통계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선택과 사정, 그리고 감정이 담겨 있다. 늦게 엄마가 된 여성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울까. 심리학은 뭐라고 말할까.
심리학에서 '노년기 긍정성 효과(positivity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 자극보다 긍정적 자극에 더 민감해지고, 감정을 더 능숙하게 조절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로라 카스텐슨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40년 넘게 이 분야를 연구하며, 나이가 들수록 인간이 감정적으로 더 안정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실제로 카스텐슨 교수 연구팀이 20대부터 80대까지 성인 1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적 연구에서, 40대 이상 참가자들은 20대에 비해 일상의 부정적 사건에 덜 흔들리고, 갈등 상황에서 더 차분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아이를 키우며 쏟아지는 수면 부족, 육아 스트레스, 끝없는 요구 앞에서 40대 엄마·아빠의 뇌가 조금은 더 버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체력은 20대보다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오히려 나이 든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더 공감하고, 쉽게 화내지 않으며, 더 여유로운 양육 태도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을 8단계로 나눴다. 그중 30~40대에 해당하는 '생산성 대 침체' 단계는, 나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시기다. 이 시기에 아이를 낳는 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준비된 헌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반면 20대 초반은 에릭슨이 말한 '정체성 대 역할 혼란' 단계로, 아직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시기다. 자신의 정체성이 채 자리 잡히기 전에 '엄마' 혹은 '아빠'라는 역할이 덮어씌워지면,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감각이 더 강하게 찾아올 수 있다. 마흔에 첫 아이를 낳은 여성들이 '이제야 진짜 나로서 엄마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영국 런던대학교(UCL) 마리아 아이졸도 박사 연구팀이 2019년 발표한 연구에서, 35세 이후에 첫 출산을 한 어머니들은 20대 초반에 출산한 어머니들보다 자녀에게 더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체벌에 의존하는 빈도가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이를 '심리적 성숙도'의 차이로 설명했다.
늦게 부모가 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감정이 있다. '내가 너무 늦게 낳은 건 아닐까',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 나는 예순이 넘는데…'라는 불안이다. 이 감정은 분명 고통스럽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불안이 오히려 강력한 동기 부여 요인이 되기도 한다.
카스텐슨 교수의 사회정서적 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남은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느낄수록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관계의 질을 높이려는 행동이 활성화된다. 쉽게 말해, '시간이 별로 없다'는 감각이 오히려 지금 눈앞의 아이에게 더 집중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과 앤 롤린스 교수팀이 35세 이상 첫 출산 여성 5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78%가 '아이와의 시간을 더 의식적으로 챙긴다'고 답했다. 늦은 출발이 오히려 더 깨어있는 부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늦은 출산이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체력의 한계, 또래 부모와의 세대 차이, 직장과 육아 사이의 균형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있다. 바로 주변의 시선이다. '왜 이제야', '너무 늦은 거 아니야'라는 말들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는 연구로도 확인된다.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클로드 스틸 교수가 정립한 '고정관념 위협(Stereotype Threat)' 이론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낙인이 붙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실제 수행 능력과 심리적 안녕감이 낮아진다. '늦은 엄마'라는 사회적 시선 자체가 당사자에게 스트레스와 자기 의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다.
늦게 부모가 된 당신이 지쳐 보인다면, 그건 당신의 나이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사회의 편견이 만들어낸 피로일 수 있다. 그 무게를 혼자 다 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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