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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청첩장을 받아든 순간, 솔직히 계산기부터 두드린 적 있지 않은가. 식대에 축의금에, 지방이라면 교통비까지. '이 사람이 내 결혼식에 올 것 같긴 한가'라는 현실적인 물음도 뒤따른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낯선 사람을 '하객 알바'로 고용하는 문화가 조용히 번지고 있다.
단순히 '돈 때문에 생긴 웃픈 현상'으로만 보기엔 뭔가 더 있다. 왜 하필 결혼식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실제 관계를 숫자로 증명하려 하는 걸까. 심리학은 이 질문에 꽤 흥미로운 답을 내놓는다.
심리학에서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라는 개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을수록 그 대상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인지 편향이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 애리조나주립대 심리마케팅학과 명예교수가 1984년 저서 '설득의 심리학'에서 체계화한 이 개념은, 결혼식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텅 빈 식장은 '이 사람의 관계망이 이 정도'라는 신호로 읽히고, 하객이 많을수록 신랑·신부는 사회적으로 사랑받는 사람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보이는 것'에 대한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의 일상화로 결혼식 사진과 영상이 광범위하게 공유되면서, 결혼식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하나의 '공개 퍼포먼스'가 됐다. 하객 알바 플랫폼을 이용한 경험자들의 후기를 보면 '식장이 너무 허전할까봐 걱정됐다'는 이유가 압도적으로 많다. 남의 시선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남의 시선에 비친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국내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2024년 미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1.3%가 '결혼식 하객 수가 신랑·신부의 사회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객은 단순한 축하객이 아니라, 내 인간관계의 성적표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간관계를 '강한 유대(strong tie)'와 '약한 유대(weak tie)'로 나누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취업이나 정보 획득 측면에서는 약한 유대가 더 유용하다고 밝혔지만, 정서적 지지와 결혼식처럼 중요한 생애 이벤트에는 강한 유대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 2030세대는 바로 이 강한 유대가 빈곤해지고 있다.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원은 평균 5명에 불과하다. 그 바깥 150명은 '아는 사람'의 영역이다. SNS 친구가 수백 명이어도, 결혼식 날 진심으로 내 옆에 앉아줄 사람은 손에 꼽힐 수 있다. 하객 알바 수요의 본질은 고물가가 아니라, 이 '관계의 공백'일지 모른다.
실제로 이수진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젊은 세대는 관계의 목적과 기브앤테이크가 분명한 실용적 관계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청첩장을 돌릴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애초에 관계를 맺지 않거나 유지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만들어진 공백을 메우는 방법으로 '하객 알바'가 등장한 셈이다.
브레네 브라운 미국 휴스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치심을 '나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감각, 즉 자신의 존재 자체가 결함이 있다는 느낌으로 정의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수치심은 사회적 단절감과 직결되며, 인간은 이를 피하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쏟는다. 하객이 적은 결혼식에서 느끼는 당혹감은 단순한 체면 문제가 아니라, 이 수치심 회피 본능과 맞닿아 있다.
결혼식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중 하나다. 그 자리에서 하객이 적다는 것은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로 왜곡되어 뇌에 각인될 수 있다. 하객 알바는 이 두려움을 돈으로 잠재우는 방어 기제인 셈이다. 물론 이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당사자들도 안다. 하지만 단 하루의 그 두려움을 버텨내기 위한 선택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현상이 드러내는 '관계에 대한 집단적 불안'이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0대의 48.7%가 '나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하객 알바는 이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객 알바를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시선은 본질을 놓친다. 이 현상은 고물가 시대 청년들의 기발한 생존법인 동시에, 우리 사회 관계망이 얼마나 얇아졌는지를 보여주는 솔직한 신호다. 하객 알바가 필요 없는 사람이 더 뛰어난 것도 아니고, 사용하는 사람이 더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선택 뒤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불안은 직면할 필요가 있다.
로빈 던바 교수의 연구는 한 가지 희망도 함께 전한다. 친밀한 관계는 평균 200시간의 함께하는 시간이 축적될 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된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 했던 친구에게 오늘 '잘 지내?'라고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것, 그것이 진짜 하객을 한 명 만드는 첫걸음일 수 있다. 화려한 식장보다 한 사람의 진심이 당신의 결혼식을 더 오래 기억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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