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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회식 자리에서 술 한 잔 거절했더니 왠지 눈치가 보였던 적,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20·30대 사이에서는 그 눈치가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나는 오늘 이 한 잔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음주를 줄인 이유로 건강이 28.6%, 경제적 부담이 27.9%를 차지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이 숫자 뒤에 더 깊은 이유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몸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심리적 욕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에드워드 데시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와 리처드 라이언 교수가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외부 압력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선택을 할 때 더 높은 만족감과 심리적 안녕감을 느낀다.
즉, '다들 마시니까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나는 오늘 마시지 않겠어'라고 스스로 결정하는 순간, 음주 여부 자체보다 그 선택권이 주는 만족감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요즘 MZ세대가 술을 줄이는 행동은 절제가 아니라 자율성의 표현에 가깝다.
2023년 영국 서섹스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술을 스스로 줄이기로 결정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삶의 만족도 점수가 평균 18.3% 높았고, 사회적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감도 22% 낮았다.
술을 줄이면서도 '취향은 확실하게'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적게 마시되 그 한 잔을 신중하게 고른다는 뜻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체성 기반 소비(Identity-Based Consumption)' 패턴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최지은 연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와 자아 표현' 연구에서 MZ세대일수록 구매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대량 소비보다 소량 고품질 소비를 선호하는 것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한 잔을 마시더라도 내가 직접 고른 크래프트 맥주나 내추럴 와인을 선택하는 행동, 그 자체가 사회적 신호가 된다. '얼마나 마셨나'보다 '무엇을 마셨나'로 대화가 이어지는 요즘 술자리가 그 증거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우리는 마시고 싶지 않아도 잔을 들었던 걸까. 심리학자들은 '동조 압력(Conformity Pressure)'을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 솔로몬 애쉬 미국 스와스모어대 심리학과 교수의 고전적 실험에서 밝혀졌듯, 인간은 명백히 틀린 선택이라도 다수가 선택하면 따르려는 경향이 강하다.
집단 회식 문화는 바로 이 동조 압력을 극대화하는 구조였다. 위계질서가 있는 자리에서 술을 거절하는 행위는 '집단에서 이탈하겠다'는 신호처럼 읽혔고, 그 불안감이 억지 음주로 이어졌다. 2022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직장인 12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51.8%가 원하지 않아도 분위기상 마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지금의 20·30대는 이 구조 자체를 낯설어하는 세대다. 개인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무례함이 아니라 성숙함으로 읽히는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거절이 관계를 해친다는 불안이 줄어든 자리에, 나를 지키는 선택이 들어선 셈이다.
최근 전 세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트렌드가 퍼지고 있다. 알코올 의존이나 건강 문제가 아니더라도, 순수한 호기심으로 술을 줄이거나 끊어보는 움직임이다. 미국 닐슨 리포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 성인의 33.1%가 알코올 섭취를 의도적으로 줄이고 있다고 답했고, 이 비율은 21~34세에서 가장 높았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자기 감각을 또렷하게 유지하고 싶은 욕구, 즉 각성 상태에서 삶을 경험하려는 심리적 흐름'이라고 설명한다. 취하는 경험보다 또렷하게 기억되는 경험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 술이 없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이 세대의 새로운 자존감 언어다.
술자리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시는 것'이 기본값이던 시대에서,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 기본값인 시대로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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