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거울 앞에 서면 어딘가 모르게 불만스럽다. 분명 어제보다 덜 먹었는데, 허벅지가 여전히 신경 쓰인다. 이건 나만 느끼는 감정일까. 아니다. 요즘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기준 자체가 심상치 않다.
최근 연예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걸그룹 아이돌 멤버들 사이에서 '뼈말라' 체형이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 멤버는 '모든 스트레스가 다이어트로 다가왔다'며 '맨날 울었다'고 고백했다. 이 말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이미 무언가 단단히 자리 잡은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내면화된 이상적 체형(internalized thin ideal)'이라고 부른다. 특정 체형을 반복적으로 노출할수록 뇌가 그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자신의 몸을 결함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준이 생물학적으로 건강한 범위를 훌쩍 벗어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크리스틴 해리슨 미국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디어를 통해 극도로 마른 체형에 반복 노출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신체 불만족도가 평균 2.3배 높게 나타났다. 특히 10대 여성에서 이 효과가 가장 강하게 나타났고, 노출 시간이 길수록 자기 몸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함께 증가했다.
걸그룹이 전면에 서는 아이돌 산업은 사실상 하루 수십 회 반복 노출의 최전선에 있다. 뮤직비디오, 직캠, SNS 피드를 통해 '뼈말라' 이미지가 알고리즘을 타고 10대의 화면 위로 쉼 없이 밀려온다. 이 반복이 결국 기준을 바꾼다.
한 걸그룹 멤버가 '스트레스가 다이어트로 다가왔다'고 표현한 것은 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단서다. 크리스토퍼 페어번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정신의학과 명예교수는 섭식장애 연구에서 '통제감 결핍'이 핵심 원인임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 통제감을 잃었을 때, 인간은 먹는 것과 몸의 크기를 조절하는 데서 대리 통제감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이돌은 데뷔 전부터 일정, 외모, 언행 모두를 관리 대상으로 놓인다. 개인의 자율성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내 몸만큼은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감각이 극단적 다이어트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고통은 '맨날 울었다'는 고백에 이미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3년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여자 중·고등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1.8%가 '현재 체중이 정상임에도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자신을 팔로우하는 아이돌이 '뼈말라'일수록 이 비율은 더 높게 나타났다.
섭식장애와 밀접하게 연관된 증상 중 하나가 '신체상 왜곡(body image distortion)'이다. 실제 체형보다 자신을 훨씬 크고 뚱뚱하게 지각하는 현상으로, 단순한 자기비하가 아니라 뇌의 지각 처리 자체가 달라지는 신경심리학적 문제다. 도쿄대학교 뇌과학 연구팀이 2022년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한 연구에서, 자신의 신체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린 여성은 실제 신체 크기를 평균 17.4% 더 크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서운 것은 이 왜곡이 스스로 인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울 속 자신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한, 다이어트는 멈추지 않는다. 아이돌 멤버가 공개적으로 '맨날 울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자체는 용기 있는 고백이지만, 그 고통을 겪는 동안 주변 누구도 '충분하다'고 말해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서 걸그룹 체중 관리는 오랫동안 묵시적 규범으로 작동해 왔다. '뼈말라'라는 단어 자체가 칭찬처럼 쓰이는 팬덤 문화는, 신체 극한화를 '노력의 증거'로 치환하는 집단 심리를 반영한다.
아이돌의 극한 다이어트는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그 체형을 소비하고 칭찬하는 우리 모두가 그 기준을 만들어 온 공동 제작자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소셜미디어 피드에서 '뼈말라'에 환호하는 댓글을 달거나 해당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 표현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신체상 왜곡을 가중시킬 수 있는 행동이다.
정여주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신체 이미지 만족도를 유의미하게 개선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소비하는 이미지가 어떻게 선택되고 편집되었는지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내면화된 왜곡된 기준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오늘 거울 앞에 서거든, 딱 한 가지만 물어보자. '지금 내 몸이 불편한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준이 불편한가.' 그 질문의 답을 찾는 순간, 당신은 이미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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