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오르면 손발이 떨려"…김범수가 겪은 ‘무대 공포‘, 트라우마일까?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무대 오르면 손발이 떨려"…김범수가 겪은 '무대 공포', 트라우마일까?


가장 잘하는 일이 갑자기 두렵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수십 번 해온 발표인데 이번엔 유독 손이 떨리고,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일인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굳어버리는 경험 말이다. '김나박이'로 불리며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꼽혔던 가수 김범수가 최근 방송에서 고백한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는 2018년 콘서트 당일 공연을 전격 취소한 이후 무대에 오르면 손발이 떨리는 증상을 겪어왔다고 털어놓았다. 재밌게 노는 놀이터 같던 무대가 어느 날 갑자기 공포의 공간이 된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단순한 긴장이 아닌 트라우마 반응으로 본다.



트라우마가 몸에 새기는 기억: 뇌는 그날을 잊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이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미국 보스턴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는 저서 '몸은 기억한다'에서 트라우마 경험이 뇌의 편도체에 강렬한 감각 기억으로 저장되어,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때 신체가 즉각적인 위협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손발이 떨리고 몸이 굳는 증상은 뇌가 현재의 무대를 과거의 위험 상황과 동일시하며 보내는 경보 신호인 셈이다.


실제로 2022년 미국심리학회(APA)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공개적 실패나 굴욕 경험을 한 성인의 약 61%가 유사한 상황에서 신체화 증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이 빨리 뛰거나 손에 땀이 나고 다리가 풀리는 반응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뇌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뇌가 나를 보호하려는 자동 반응에 가깝다.


신동엽이 방송에서 '스포츠 선수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비슷하다'고 표현한 것은 심리학적으로도 정확한 비유다. 운동선수들이 큰 부상 이후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 못하는 현상, 이른바 '입스(Yips)'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입스 현상과 수행 불안: '잘하던 사람'이 더 무너지는 이유


입스는 원래 골프에서 시작된 용어지만, 지금은 스포츠 심리학 전반에서 고도로 숙련된 사람이 특정 동작을 갑자기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현상은 초보자가 아니라 전문가에게 더 자주 나타난다. 데보라 스탠스베리 퍼이오 미국 베일러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19년 스포츠 선수 3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입스는 해당 종목 경력이 10년 이상인 숙련자에게서 발생 빈율이 33%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왜 잘하는 사람이 더 무너질까. 전문가일수록 자신의 수행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실패에 대한 해석이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잘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이 강할수록, 실패의 충격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자아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진다. 김범수에게 무대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였다.


이처럼 자기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된 능력에서 실패를 경험할 때, 뇌는 일반적인 실수보다 훨씬 강렬한 위협 반응을 저장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다시 재생된다.



회피할수록 커지는 공포: 트라우마 극복의 역설


공연을 취소하고 무대를 피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불안을 줄여준다. 그러나 회피는 장기적으로 공포를 더욱 강화한다. 에드나 포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신의학과 명예교수가 개발한 '지속 노출 치료(Prolonged Exposure Therapy)' 이론에 따르면, 두려운 상황을 반복적으로 피하면 뇌는 그 상황이 실제로 위험하다는 신호를 더욱 강하게 각인한다. 2021년 임상심리학 저널에 게재된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회피 행동을 지속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공포 증상이 평균 2.3배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가운 것은, 트라우마는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 인지행동치료(CBT), 그리고 점진적 노출 훈련은 무대 공포나 수행 불안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효과가 검증된 치료법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트라우마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EMDR을 1차 권고 치료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김범수가 방송에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것 자체가 사실 치료의 첫걸음이다. 심리학자들은 트라우마를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 즉 '내러티브 처리'가 뇌의 편도체 과활성화를 낮추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당신의 '무대'는 어디인가: 일상 속 수행 불안 들여다보기


무대 공포는 가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거나, 오랫동안 잘해온 일인데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경험,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오던 운전이 큰 사고 이후 두려워진 경험. 모두 같은 심리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한국심리학회가 2023년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1.8%가 '특정 상황에서 이유 없이 몸이 굳거나 떨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 갑자기 두려워졌다면, 그것은 나약함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일이 당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이 말해주는 것일 수 있다. 혼자 버티지 말고, 심리 상담사나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는 것은 어떨까.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무대에 다시 서는 것, 그것이 진짜 용기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3016
  • 기사등록 2026-09-14 07:58:0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