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경기가 끝나고도 며칠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심판 판정이 억울하고, 상대 팀 팬들의 반응이 역겹고, SNS에는 '역대급 오심'이라는 글이 도배된다. 나만 이런 건 아닌가? 스포츠 중계를 보다가 화가 나서 리모컨을 집어 던진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최근 이강인의 마드리드 더비 출전을 둘러싸고 레알 마드리드 팬들과 무리뉴 감독이 '역겨운 오심'이라며 공개적으로 분노를 폭발시킨 사건이 화제가 됐다. 스포츠 심판 판정 하나에 수십만 명이 동시에 격분하는 이 현상, 심리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우리 뇌에서 꽤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레알 팬과 아틀레티코 팬은 완전히 다른 판정을 '정답'으로 인식한다. 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구조적 특성이다.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톰 길로비치 교수는 1985년 NFL 팬들을 대상으로 한 고전 연구에서, 동일한 반칙 장면을 보여줬을 때 응원 팀에 따라 판정에 대한 '공정성 인식'이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불리한 판정은 오심으로, 유리한 판정은 당연한 것으로 해석하는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우리 뇌는 원하는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만 골라 수집한다는 뜻이다. 스포츠 관람 상황에서는 응원팀에 대한 감정적 애착이 이 회로를 더욱 강하게 가동시킨다.
특히 무리뉴처럼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권위 있는 인물이 등장하면, 팬들의 분노는 더욱 빠르게 증폭된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라는 사회적 확인이 이루어지는 순간,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이다.
스포츠 관람이 개인 경험이 아니라 집단 경험인 이유는 단순히 함께 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인간의 뇌에는 타인의 감정을 자동으로 모방하게 만드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 시스템이 있다.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신경과학과 자코모 리촐라티 교수가 발견한 이 시스템은, 옆 사람이 분노하는 것을 목격할 때 내 뇌도 유사한 분노 회로를 활성화시킨다. 경기장에서 수만 명이 동시에 야유를 퍼붓는 장면은 이 거울 뉴런 시스템이 집단적으로 작동하는 결과물이다.
SNS 환경에서 이 현상은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번진다. 페이스북 데이터과학팀이 2014년 약 7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감정을 담은 게시물은 긍정적 게시물보다 1.29배 빠르게 확산됐다. '역겨운 오심'이라는 무리뉴의 발언이 순식간에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피드를 채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고 부른다. 엘레인 해필드 미국 하와이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이 현상이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과정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분노하는 사람들의 분노를 '흡수'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분노는 분명 불쾌한 감정인데, 사람들은 왜 오심 영상을 반복해서 찾아보고, 분노의 댓글을 달고, 더 많은 '부당함'을 확인하려 할까. 그 답은 뇌의 보상 시스템에 있다. 캐나다 맥길대학교 심리학과 카일 스미스 박사 연구팀이 202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옳은 분노'를 표출할 때 뇌의 측좌핵, 즉 보상 중추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fMRI 촬영으로 확인됐다. 쉽게 말해, 부당한 일에 분노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보람'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분노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유지하고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악질 오심 모음 영상을 찾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댓글들을 확인하며 '그래, 나만 이상한 게 아니야'를 반복하는 것이다. 스포츠 심판 논란이 경기가 끝난 뒤에도 며칠씩 이어지는 심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집단적 도덕 감정은 부당함에 맞서는 사회적 동력이 되기도 한다. 다만 스포츠 맥락에서는 '우리 팀'이라는 집단 정체성이 개입하면서 객관적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관람 중 분노를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문제는 그 분노가 경기장을 벗어나 일상까지 침범할 때다. 스포츠 심리학자 에밀리 내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응원팀의 결과와 자신의 자존감을 지나치게 동일시할수록 경기 후 부정적 감정이 오래 지속된다"고 설명한다. 영어로는 이를 'BIRGing(Basking In Reflected Glory)', 즉 '반사된 영광 목욕하기'의 반대 현상인 'CORFing(Cutting Off Reflected Failure)'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감정을 현명하게 다루는 첫걸음은 단순하다. 경기 직후 바로 SNS를 열어 분노의 게시물을 확인하는 대신,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는 것이다. 분노의 생리적 반응, 즉 심박수 상승과 아드레날린 분비는 대개 20분 안에 가라앉는다. 그 시간을 버텨내면 같은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이 응원하는 팀이 억울한 판정을 받았다면, 실컷 속상해해도 괜찮다. 다만 그 감정이 '우리 팀이 졌다'에서 끝날 수 있도록, 오늘 밤만큼은 SNS 대신 가까운 사람에게 '진짜 억울했다'고 말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 감정은 표현될 때 비로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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