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화장실도 못 가"…할머니 손에 큰 아이, 왜 엄마·아빠가 낯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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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아빠랑 화장실도 못 가"…할머니 손에 큰 아이, 왜 엄마·아빠가 낯설까?


봉태규·하시시박 부부의 최근 인터뷰가 화제다. 두 아들이 할머니 손에 컸더니 화장실도 혼자 못 갈 만큼 할머니에게만 의존한다는 이야기였다. 방송을 보던 많은 부모들이 '우리 집 얘기'라며 공감했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조부모 양육은 이제 드문 풍경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준 건 할머니인데, 왜 정작 엄마 아빠와의 관계가 어색해지는 걸까. 심리학은 이 현상에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다.



애착은 '시간'이 만든다: 함께한 순간의 총합이 곧 관계다


영국의 정신의학자 존 볼비(John Bowlby)가 정립한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 따르면, 영아는 생후 6개월에서 만 2세 사이에 '주 양육자'와 가장 강력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한다. 중요한 건 혈연이 아니라 '반응의 빈도'다. 배고플 때 먹여주고, 울 때 달래주고, 눈을 맞춰준 사람이 아이의 뇌에 '안전 기지'로 각인된다.


미국 미네소타대 발달심리학과 앨런 스루프(Alan Sroufe) 명예교수가 1970년대부터 40년 넘게 진행한 종단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생후 12~18개월의 애착 형성 경험이 이후 사회성, 정서 조절 능력, 심지어 학업 성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할머니가 '엄마'처럼 느껴지는 건 배신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저 뇌가 학습한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형성된 애착은 바꿀 수 없을까.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 볼비의 이론을 이어받은 영국 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는 애착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지금 당장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뜻이다.



아이가 부모를 '낯선 사람' 취급하는 심리: 낯가림의 역설


흔히 낯가림은 생후 8개월 전후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라 알고 있지만, 심리학적으로는 훨씬 복잡한 층위를 가진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발달심리학과 알리슨 고프닉(Alison Gopnik)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는 주 양육자와 비교해 상호작용 빈도가 현저히 낮은 대상에게 불안 반응을 보인다. 매일 보는 할머니는 '안전'이고, 주말에만 보이는 엄마 아빠는 '미지의 존재'가 되는 셈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참조(Social Referencing)'의 왜곡으로 설명한다. 아이는 낯선 상황에서 자신의 '안전 기지'를 먼저 쳐다보며 반응을 결정한다. 할머니가 있을 때 아이가 훨씬 대담해지고, 부모와 단둘이 있을 때 위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가 부모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아직 부모를 자신의 안전망으로 학습하지 못한 것이다.


2019년 국제학술지 '발달과학(Developmental Science)'에 실린 연구에서는 주 양육자가 아닌 부모와 하루 2시간 이상 단독으로 보내는 시간을 12주간 확보한 아동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부모와의 안정 애착 점수가 평균 31.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보다 밀도 높은 '단독 시간'이 핵심이었다.



조부모 양육의 그림자: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봉태규의 고백처럼, 조부모 의존이 심해진 아이를 보며 부모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모 효능감(Parental Self-Efficacy)' 위기로 설명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과대학 심리학과 캐런 린더-크로프트(Karen Lindner-Kroft) 연구팀이 맞벌이 부모 4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부모 양육 비중이 높을수록 부모의 자기효능감이 낮아지고 양육 불안이 높아졌다. '내 아이인데 내가 더 낯선 사람 같다'는 죄책감이 오히려 부모로 하여금 아이에게 다가서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육아정책연구소가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부모 주 양육 가정 아동의 48.7%가 부모와의 분리 시 강한 저항 반응을 보였고, 부모 23.1%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심리적 거리감'을 호소했다. 문제는 이 거리감을 방치할수록 간격이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관계를 되찾는 작은 방법들


전문가들은 '보상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미안한 마음에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해주려다 보면 아이는 오히려 낯설고 부담스러운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박혜원 교수는 '일상의 반복이 신뢰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거창한 나들이보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함께 밥을 먹거나, 잠들기 전 10분간 책을 읽어주는 루틴이 훨씬 강력하다.


조부모와의 관계를 적대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에게 할머니와 엄마 아빠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아이의 애착 불안은 더 깊어진다. 아이가 할머니를 좋아하는 것과 부모와 가까워지는 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애착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오늘 화장실에 혼자 못 간다고 해서 영원히 그런 것은 아니다. 퇴근 후 딱 15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그 15분이 쌓여 아이의 뇌 속 '안전 기지' 목록에 당신의 얼굴이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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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9-22 08: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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