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파도 매일 요구하는 남편…‘성적 강압‘이 왜 사랑이라 착각될까?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아내가 아파도 매일 요구하는 남편…'성적 강압'이 왜 사랑이라 착각될까?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아내가 아파도 매일 요구하는 남편…'성적 강압'이 왜 사랑이라 착각될까?


몸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도 남편이 관계를 요구했다. 거절하면 며칠씩 말을 안 하거나 생활비를 끊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응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폭력이었을까.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에서 소개된 실제 사례가 온라인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내가 아플 때도 매일 부부관계를 요구하고, 관계 횟수에 따라 생활비를 책정했다는 남편의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도 나왔다. '왜 어떤 사람은 이것이 사랑이라고 믿을까?'



통제가 사랑으로 보이는 순간: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착각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 패턴을 '친밀한 파트너 강압 통제(Coercive Control)'라고 부른다. 상대를 물리적으로 해치지 않더라도 경제적 수단이나 감정적 압박을 이용해 원하는 행동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겉으로는 '부부 사이의 일'처럼 포장된다는 것이다.


에반 스타크 미국 럿거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07년 저서 '강압적 통제'에서 이 개념을 체계화했다. 스타크 교수는 신체적 폭력보다 강압적 통제가 피해자의 자아를 더 깊이 파괴한다고 경고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천천히 자기 결정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 강압이 경제적 보상과 결합될 때 피해자는 스스로를 '협상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이 상황의 가장 교묘한 부분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착각이 피해 사실을 가린다.



왜 떠나지 못할까: 학습된 무력감과 외상 유대


피해자가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흔히 '왜 참고 사냐'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잘못된 시각이다. 마틴 셀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개념에 따르면, 반복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노출된 사람은 실제로 탈출구가 있어도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외상 유대(Trauma Bonding)'라는 현상도 작동한다. 학대와 보상이 불규칙하게 반복될 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강한 감정적 애착을 형성한다. 가해자가 가끔 친절하거나 사과할 때 피해자의 뇌는 그 순간을 '진짜 그 사람'으로 인식하고 집착하게 된다. 이는 의지 부족이나 어리석음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 외상이 뇌에 만들어 낸 신경학적 반응이다.


실제로 국내 여성가족부가 2022년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배우자로부터 성적 강압을 경험한 여성의 69.3%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가정 내 일'이라는 인식과 경제적 의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가해자 심리: '소유'와 '통제'를 사랑으로 오해하는 왜곡


그렇다면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의 심리는 어떨까. 심리학자들은 이 패턴의 뿌리에 '소유적 사랑(Possessive Love)' 개념이 있다고 설명한다. 배우자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일부 혹은 자원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이런 인식이 형성되면 상대의 거절은 '배신'으로, 자신의 요구는 '당연한 권리'로 해석된다.


수전 피스크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고통 신호를 처리하는 뇌 영역의 활성도가 낮게 나타났다. 즉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욕구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회로 자체가 약화되어 있는 셈이다.


경제적 통제를 병행하는 경우는 더욱 계획적이다. 생활비를 '관계 횟수'에 연동하는 행위는 관계를 거래로 전환시키면서 동시에 상대의 저항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이는 무의식적 감정 반응이 아니라 의도적 권력 행사에 가깝다.



주변에서 알아채는 법: 작은 신호들을 놓치지 말 것


강압적 통제는 대부분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몇 가지 신호를 주의 깊게 살피면 주변의 누군가가 이 상황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배우자가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거나, 경제적 결정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고 있거나, 몸이 좋지 않은데도 특정 이유로 자주 약속을 취소한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적 강압 피해자 상당수가 처음 도움을 요청한 계기가 '지인이 먼저 말을 걸어줬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전문가의 개입보다 주변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먼저였다는 뜻이다.


혹시 지금 이 기사를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한국여성의전화(02-2263-6464)나 여성긴급전화(국번없이 1366)에 조용히 전화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은 착각이 아니고, 당신의 선택을 존중받을 권리는 결혼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3044
  • 기사등록 2026-09-22 08:56:1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