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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경로당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그런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텃세가 무섭고, 어색하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저기 낄 사람인가' 싶다. 65세 이상 인구가 1100만 명을 넘어선 지금, 노년층의 외로움은 숫자만큼이나 무겁게 쌓이고 있다.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갈 곳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이 한마디가 노년의 고독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공간은 있다. 마음이 없을 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사회정서적 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으로 설명한다. 로라 카스텐슨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남은 시간이 줄어든다고 느낄수록 새로운 관계보다 의미 있는 소수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려는 동기 자체가 약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소수의 관계'마저 하나둘 사라지는 데 있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녀는 각자의 삶으로 바빠진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65세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8%가 '가까운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주 3회 미만'이라고 답했다. 고독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주변이 비어가는 과정에서 스며드는 것이다.
게다가 노년층은 고독감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왜 외롭다고 해'라는 자존심, 자녀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마음, 그리고 수십 년간 단련된 감정 억제 습관이 겹친다. 속으로 쌓이는 외로움은 신체 건강에도 직격탄을 날린다.
영국 요크대 심리학과 존 카치오포 교수의 연구는 충격적이다. 만성적인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사망 위험을 높인다. 2015년 브리검영대 줄리안 홀트-런스태드 교수 연구팀이 148개 연구, 총 30만 8849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사회적 고립은 조기 사망 위험을 평균 29%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층의 고독은 뇌에도 영향을 준다. 외로움을 오래 느낀 노인일수록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2020년 미국 신경과학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최대 40% 높았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의 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경로당 같은 공간이 있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까. 전문가들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낯선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외로움을 해소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색함 속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고독감은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정순둘 교수는 경로당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기존 공간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텃세'다. 심리학 용어로는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고 한다. 이미 형성된 무리 안에서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기 꺼리는 심리적 경향이다. 이 편향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강화된다. 낯선 자극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기존 루틴을 지키려는 욕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접근성 문제도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다. 정보 접근성, 심리적 접근성, 문화적 접근성이 모두 걸림돌이 된다.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되는지 모르거나, 알아도 '내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발걸음을 막는다. 특히 혼자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의 용기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진짜 친밀한 관계 하나를 형성하는 데는 평균 200시간 이상의 누적된 접촉이 필요하다. 경로당을 한두 번 방문했다가 어색해서 그만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관계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따뜻해진다.
전문가들은 노년층의 사회적 연결을 위해 '의무 없는 만남'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성과나 목표 없이 그냥 함께 있어도 되는 곳. 커피 한 잔 마시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관계. 이런 느슨한 연결이 쌓일 때 외로움은 천천히 물러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약한 유대의 힘(strength of weak tie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노년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님께, 혹은 혼자 사시는 이웃 어르신께 오늘 전화 한 통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 '별일 없으시죠'라는 짧은 한마디가, 그분의 오늘 하루를 전혀 다른 색깔로 바꿔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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