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상대가 세 번이나 '그만하라'고 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 산하 2군 리그인 MLS 넥스트 프로에서 콜럼버스 크루 2군을 이끌던 감독 페데리코 이과인이 경기 후 악수 자리에서 여성 심판의 손을 꽉 쥐고 놓지 않은 채 '이건 남자의 경기'라고 말한 사건이 전 세계 스포츠계를 뒤흔들었다. 구단은 곧바로 그를 해임했다.
이 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불편하고 분노스러운 이유는 단순히 '무례한 발언' 때문만이 아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경계 신호를 무시하는 순간, 우리 뇌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심리학은 이 사건을 어떻게 읽을까.
심판이 세 차례 명확히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과인 감독은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권력 역설(power paradox)'로 설명된다. 대커 켈트너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심리학과 교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과 신호를 처리하는 뇌의 공감 회로, 특히 전두엽 피질의 활동이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켈트너 교수가 2003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높은 권력 지위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타인의 비언어적 거부 신호를 인식하는 능력이 평균 34% 낮았다. '그만해'라는 말이 들렸더라도 그것이 실제 행동을 멈춰야 하는 신호로 처리되지 않는 것이다. 감독이라는 직위가 만들어낸 권력 감각이 상대의 경계 신호를 차단한 셈이다.
이를 '공감 격차(empathy gap)'라고도 부른다. 권력이 클수록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의 감정보다 먼저 처리된다. 이과인의 '이건 남자의 경기'라는 발언은 그가 가진 젠더 편견과 결합하면서 경계 침범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스포츠 현장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 문화가 공고했던 공간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환경이 '제도적 편견(institutional bias)'을 내면화시킨다고 설명한다. 크리스티나 스파다포라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부교수가 2021년 유럽 남성 스포츠 지도자 5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58.3%가 '여성 심판이 남성 경기를 판정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답했다. 이 중 71%는 자신이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이다. 의식적으로는 '여성도 당연히 심판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현장에서 여성 심판을 마주하면 무의식적 반감이 행동으로 튀어나온다. 이과인의 발언은 충동적이었을지 몰라도, 그 충동의 뿌리는 오랜 시간 쌓인 내면화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의 반응이 '경기 후 감정이 고조된 순간'에 나왔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스트레스와 감정적 흥분 상태에서 암묵적 편견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쉽다고 본다. 평소에는 통제되던 편견이, 판단력이 흐려지는 순간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심판이 명확히 거부했음에도 이과인이 행동을 이어간 배경에는 '도덕적 해제(moral disengagement)' 심리가 작동한다. 앨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제안한 이 개념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양한 내면의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나는 그냥 이야기를 한 것뿐이다', '원래 스포츠 현장이 이렇다', '이 정도는 별것 아니다'와 같은 생각들이 바로 그것이다.
반두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권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은 도덕적 해제를 더 빈번하게 활용한다. 지위가 만들어내는 '특권 의식'이 자기 행동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막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이 정도 하는 건 괜찮겠지'라는 심리다. 이 자기 면죄부가 경계 침범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과인 감독이 세 번의 거부 신호를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성격 문제만이 아니라, 오랜 스포츠 문화 속에서 권위자가 경계를 넘어도 제지받지 않아왔던 구조적 경험이 쌓인 결과일 수 있다. 이번 해임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콜럼버스 크루 구단의 신속한 해임 결정은 심리학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클로드 스틸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편견은 환경이 어떤 규범을 세우느냐에 따라 표출 여부가 달라진다. 조직이 명확한 경계와 책임을 설정할 때, 암묵적 편견이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최대 47% 감소했다. 구단의 결단이 단순한 징계를 넘어 문화 변화의 메시지가 되는 이유다.
우리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가족 안에서, 친구 사이에서 누군가의 '그만해'가 묵살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신호를 듣지 못하는 건 귀가 먹어서가 아니라, 권력 감각과 편견이 그 신호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오늘 주변 누군가의 '그만해'를 진심으로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한 번의 멈춤이, 신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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