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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학벌이 뭐가 중요해, 실력이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아이 학원비에 수백만 원을 쏟아붓는 부모가 있다. 머릿속으로는 '학벌주의 타파'를 외치면서, 손은 어느새 명문대 입시 정보 카페를 누르고 있다. 나만 이런 건 아닐까?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7명은 '좋은 학벌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동시에 상당수가 '학벌주의가 없어져야 한다'는 데도 동의했다. 이 모순된 답변, 과연 우리는 위선자일까?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태도와 행동의 불일치(attitude-behavior gap)'라고 부른다. 사람은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가치와 실제 삶에서 내리는 선택이 서로 다를 때가 많다. 학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녀의 대학 간판에 집착하는 것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레온 페스팅거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1957년 제안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두 가지 상충하는 신념이 동시에 존재할 때 사람은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행동을 바꾸기보다 생각을 살짝 비틀어버리는 쪽을 선택한다. '나는 학벌주의가 싫지만, 우리 아이만큼은 안전하게 살았으면 해'라는 식으로.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자 데일 밀러 교수는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을 '나의 가치'가 아닌 '남들의 기대'로 인식할 때 더 쉽게 그 규범에 따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학벌주의가 나쁘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니 따를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한다.
다원적 무지란, 집단 내 대부분의 사람이 특정 규범에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나만 빼고 다들 동의하겠지'라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실제로는 주변 사람 대부분이 속으로 같은 불만을 품고 있는데도, 모두가 침묵하기 때문에 그 규범이 마치 사회 전체의 합의인 것처럼 유지된다. 학벌주의가 바로 그 구조 위에서 살아남고 있다.
이런 심리가 세대를 넘어 반복될 때 '구조적 관성'이 된다. 내가 싫어하는 시스템을 내 아이에게도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서 학벌이 필요한 이유로 취업과 승진이 가장 많이 꼽혔다는 점은, 사람들이 학벌을 가치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생존 도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공지능(AI)이 직업 지형을 바꾸고 있는 지금, 명문대 간판의 효용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사람들은 검증된 과거의 기준에 더 강하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불확실성 하에서의 고정화(anchoring under uncertainty)'라고 설명한다.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처음 접한 기준점, 즉 '앵커'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다. AI 시대가 왔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명문대가 안전하다'는 앵커가 워낙 강하게 박혀 있어 선택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불안한 세상에서 익숙한 것에 기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그러나 카너먼은 동시에 경고했다. 앵커에 의존한 판단은 실제 현실과 점점 멀어질 위험이 있다고. 학벌이라는 오래된 앵커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다 보면, 정작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키울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학벌주의를 싫다고 하면서도 학원비를 내는 당신이 위선자인 건 아니다.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 구조 사이에서 치이고 있는 것에 가깝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갈등을 '도덕적 허가(moral licensing)' 현상과 연결 짓기도 한다. 한 번 '올바른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이후의 상충되는 행동을 스스로에게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는 이론이다.
중요한 건 자기 혐오가 아니라 자기 인식이다. '나는 왜 이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솔직하게 들여다볼 때, 비로소 태도와 행동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한다. 오늘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좋은 대학이 왜 중요한지'가 아니라, '네가 정말 잘하고 싶은 게 뭔지'를 물어보는 것. 그 작은 질문 하나가 학벌주의라는 오래된 앵커를 조금씩 느슨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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