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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직하고 나면 뭘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어느 날 동네 문화센터에서 라인댄스 수업을 들었다가 그게 전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처음엔 어색해서 두 발이 제멋대로 움직였는데, 어느 순간 음악에 몸을 맡기고 나니 20년은 젊어진 것 같더라고 했다.
요즘 50대, 60대 사이에서 댄스 열풍이 심상치 않다. 문화센터 댄스 강좌는 등록 시작 몇 분 만에 마감되고, 공원 어귀에서는 새벽부터 트로트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중장년 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취미 활동일까. 심리학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춤은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니다. 피터 로위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1년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단순 걷기나 조깅보다 도파민과 세로토닌 분비량을 평균 18.3% 더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음악과 동작이 동시에 결합될 때 뇌의 보상 회로가 더 강하게 활성화됐다.
중년 이후에는 이 효과가 더 두드러진다. 은퇴 후 일상의 구조가 사라지면서 생기는 '목적 공백'이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댄스는 정해진 시간에 특정 장소에 나가야 한다는 구조적 루틴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연분홍 숭실대 국민생활체육연구소 연구교수는 '노인들의 정기적인 댄스 참여는 단순한 체력 증진을 넘어 삶의 의미감과 자기효능감을 회복하는 심리적 치료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독일 신경퇴행성질환센터 연구팀이 2017년 노인 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18개월간 댄스를 꾸준히 한 집단은 일반 운동 집단보다 해마 부피가 더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해마는 기억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뇌 영역으로, 노화와 함께 위축되기 쉬운 부위다.
댄스 열풍의 또 다른 심리적 비밀은 '함께'에 있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집단으로 리듬을 맞추는 행동이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해 타인과의 유대감을 빠르게 형성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이른바 '사회적 결속 가설'이다. 낯선 사람들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라는 감각이 빠르게 생겨난다.
50대 이후 사회적 관계망은 급격히 좁아진다.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자녀는 독립하고,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는 상실의 시기가 겹친다. 이 시기에 댄스 강좌는 단순한 취미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망을 만드는 사교 무대가 된다. 실제로 국내 한 문화센터 운영자의 말을 빌리면, 댄스 강좌 수강생의 82%가 '수업 후 동기들과 식사 또는 차를 마시는 모임이 생겼다'고 응답했다.
혼자 집에서 유튜브 댄스 영상을 따라 하는 것과 강좌에 나가 함께 추는 것이 심리적으로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같은 동작을 공유하는 경험은 서로를 더 빨리, 더 깊이 연결시킨다.
춤은 몸으로 하는 자기 표현이다. 그런데 많은 중장년층은 오랜 시간 '나'보다 '역할'로 살아왔다.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가정의 경제 책임자로서 수십 년을 지내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조차 낯설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소외'라고 부른다.
댄스는 이 소외를 깨뜨리는 데 독특하게 효과적이다. 음악에 반응해 몸이 움직이는 순간, 머릿속 잡념이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의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마음챙김(mindfulness)과 유사한 상태를 만들어낸다. 마크 그린버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리듬 기반의 신체 활동은 반추적 사고를 차단하고 현재 순간 인식을 높이는 데 명상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거기에 '잘 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틀려도 웃어넘기고, 옆 사람과 박자를 맞추다 부딪혀도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실패해도 괜찮다'는 감각이 살아난다. 심리학적으로는 이를 '심리적 안전감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처음 댄스 강좌에 등록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나이 들어서 무슨 춤이냐'는 시선이 두렵고, 몸이 굳어 따라가지 못할까봐 걱정된다. 그런데 심리학 연구는 오히려 이 망설임 자체가 마음의 신호라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느끼는 긴장감은 뇌가 성장 가능성을 감지했다는 반응이기도 하다.
꼭 정식 강좌가 아니어도 된다. 오늘 저녁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30초만 몸을 흔들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내 몸이 음악에 반응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문득 거실에서 혼자라도 리듬에 몸을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충동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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