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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뉴스를 보다 말문이 막힌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성범죄로 실형을 살았던 고영욱이 기안84의 위생 관념을 두고 SNS에 '연예계도 말세'라며 혀를 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은 들끓었다. '저 사람이 저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은 느낌, 그 황당하고 뜨거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심리학에서는 이 불쾌한 감정에 이름을 붙여 두었다. 그리고 우리가 왜 그토록 강하게 반응하는지, 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꽤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일관성 탐지기' 역할을 한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 또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발언 사이에 불일치가 감지되는 순간, 전두엽과 편도체가 동시에 활성화되며 강한 경계 신호를 보낸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조슈아 그린 교수는 도덕 판단 과정에서 감정 처리 영역이 먼저 작동한 뒤 이성적 판단이 뒤따른다고 밝혔다. 즉, 우리가 고영욱의 발언에 분노를 느끼는 건 이성적 계산이 아니라 뇌의 자동 반응인 셈이다.
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도덕적 위선 민감성(Moral Hypocrisy Sensitivity)'으로 설명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을 목격할 때, 우리는 정의 감각이 훼손된 듯한 불쾌감을 느낀다. 특히 비난의 강도가 클수록, 그 비난자의 도덕적 결함이 클수록 분노 반응은 더 강해진다.
2019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 알렉산더 조던 교수 연구팀이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물이 타인을 비난하는 장면을 봤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평균 2.3배 강한 분노 반응을 보였다.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자격 없는 비판'일 때 감정 반응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위선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진화적 이유가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인지신경과학과 세라-재인 블레이크모어 교수는 인간이 집단 내 '무임승차자'와 '규칙 위반자'를 색출하는 능력을 진화시켜 왔다고 설명했다. 자신은 규칙을 어기면서 남에게는 규칙을 요구하는 사람은 집단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가장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도덕 면허 이론(Moral Licensing Theory)'과도 연결 짓는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의 사소한 행동을 지적할 경우, 주변 사람들은 이를 '도덕적 채무 불이행'으로 인식한다. 우리가 분노하는 건 기안84의 위생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이 '채무 불이행'의 적나라한 노출 때문인 것이다.
여기에 SNS가 증폭제 역할을 한다.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소셜미디어가 도덕적 분노를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강화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분노는 플랫폼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되는 감정이며, 공분(公憤)은 순식간에 집단 정서가 된다.
이번 논란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심리학적 지점은 '피해자 감수성'이다. 고영욱의 범죄 피해자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공개적 발언은 피해자는 물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심리적 재자극(re-traumatization)을 유발할 수 있다.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을 축소하거나 무시한 채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장면이 피해자의 회복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분노는 쓸모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하이트 교수는 집단적 도덕 분노가 사회적 규범을 재확인하고 공동체의 경계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전과자가 타인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단적 반응은, 그 자체로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규범을 선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 이 분노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비난 대상을 향한 분노'가 '특정 개인을 향한 무차별 공격'으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 미국 위스콘신대 사회심리학과 연구에서는 온라인 도덕 분노가 집단화될수록 원래의 문제 의식과 멀어지고 감정적 쾌감만 남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뉴스를 보며 치미는 분노, 억울함, 허탈감은 당신이 예민한 게 아니다. 정의 감각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다만 심리학자들은 이 감정을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고 말한다. 분노를 반추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고, 정작 중요한 현실 문제에 쓸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늘 뉴스를 보며 화가 났다면, 딱 한 가지만 해보자. 그 분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이다. 특정 인물을 향한 감정인지, 아니면 그 뒤에 있는 구조나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인지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은 한결 정리된다. 감정을 소비하는 것과 감정을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 오늘의 분노가 당신 안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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