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한국심리학신문=김동연 ]
프랑켄슈타인. 이 단어에 우리는 인간의 형상을 한 흉측한 괴물이 떠오른다. 경우에 따라 초록색 피부나 못이 박힌 머리 등을 가미할 수 있다. 그 연상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괴물만 떠올리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괴물과 인간을 같이 떠올리는 경우이다. 전자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고, 후자는 최소한의 정보는 있는 사람이다.
다수의 기억과 달리,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 괴물(The Creature)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빅토르 프랑켄슈타인(Victor Frankenstein)이다. 따라서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수식어가 필요하다. ‘괴물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그는 괴물에게 이름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사실과 진실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에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짓는 순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록 생명체일지라도 여타 실험에서 실패했던 (생명 없는) 것들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는 실험체를 외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애정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이름 짓기는 애정의 영역에서 비롯된다. 책상은 책상이고, 의자는 의자이다. 한편, 어느 가정에 더불어 사는 강아지를 강아지라고 부르진 않는다. 고양이도 그냥 고양이가 아니다. 저마다 보호자가 선물한, 고유한 이름을 가진다.
그러나 이따금 이름이 있을 법한 동물들을 이름 없는 상태로 만나곤 한다.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이 그렇다. 이곳은 국가에서 보호하는 동물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데, 특히 실종 동물을 보호하는 곳으로 익숙하다. 각종 동물의 사진부터 종류와 품종, 성별과 털색 등 세부 사항을 명시해 놓았지만, 이름은 좀처럼 확인하기 어렵다. 이름은 그것을 가진 자와 아는 자의 특권이기에 아무개가 쉽사리 명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여 이름이 있다면 실종된 동물을 찾기가 수월할 테지만, 그다지 중요한 정보는 아닐 수 있다. 어차피 보호자와 동물은 이름 없이도 서로를 알아본다.
이를 곱씹을수록, 실종 동물이 허다하다는 사실은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우리는 실상 그것이 유기 동물이라는 진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대다수가 이름 없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있는(던) 동물이다. 단지 그 누구도 똑바로 호명해 주지 않는 상황에 놓인 것뿐이다.
책임지지 않는 인간
개인적으로 반려동물을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보호자들을 마냥 달갑게 보지는 않는다. 동물과 함께 살지 않을뿐더러, 개는 개처럼 키워야 한다는 은밀한 사고가 있다. 물론 저마다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과 기준이 다르므로 여기서 그 시비를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이름에 관한 질문을 되뇔 수밖에 없다. 그들도 이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모종의 사정을 빌미로 이름을 빼앗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동물을 유기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유상식, 배관표(2022)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 양육을 포기하고 싶은 소유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호소에 동물을 인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유기동물 처리 방법의 경직성을 언급한다. 따라서 다양한 이유로 양육을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면 지인이나 친척에게 양육을 부탁하는 개인적인 방법을 찾다,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에는 ‘몰래 내다 버리는 것’이 유일한 실질적인 해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실질적인 해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이기에 정답도, 면죄부도 될 수 없다.
이름은 부르지/불리지 않아도 남는다. 최소한 그 이름을 수수한 주체와 객체의 머릿속엔 그렇다. 그러므로 이름 짓기는 한시적으로 피어나는 감정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애정의 다른 이름이 책임인 것을 아는 자만이, 이름을 선물할 자격이 있다.
이 세상에 이름 없는 것은 없다. 하지만 개중 고유한 이름을 가진 존재는 드물다. 그렇기에 이름 짓기는 대명사나 보통명사에 그쳤던 존재를 고유명사로 만드는 중임(重任)이다. 이때 임(任/duty)이 어휘적인 이름에 대한 값이라면, 중(重/heavy)은 내포적인 이름에 대한 것이다. 초코, 보리, 나비 등 이름은 단순해도 된다. 그러나 이름을 짓는 순간부터 그 대상을 대하는 마음은 무거워야 한다.
만약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더라면, 우리는 그 이름으로 괴물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을 얻지 못한 피조물은 창조주의 이름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그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는 이름을 빼앗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임지지 않는 인간은 괴물과 다름없다.
* 참고 문헌
1) 메리 셸리. (2021). 프랑켄슈타인. 서울: 현대지성
2) 유상식, 배관표. (2022). 유기동물 관리 정책개발을 위한 발생원인 실증분석. 서울행정학회,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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