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한국심리학신문=김수현 ]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하지만 때로는 죄가 되어버리는 사랑이 있다.
• 아이돌과 팬이라는 관계
아이돌은 ‘우상’이다. 팬은 아이돌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팬은 아이돌을 위해서 앨범을 사고, 스트리밍하고, 팬 사인회를 가고, 심지어 해외 행사까지 따라간다.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일명 머글의 입장에서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이런 행동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얼핏 보면 아이돌을 향한 팬들의 응원은 대가 없는 사랑처럼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따금 뉴스에 아이돌과 팬 관련 기사가 올라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돌과 팬은 계약 관계이다.
아이돌은 사람으로 구성된 생산물이고, 팬은 소비자다. 팬이 소비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면, 아이돌은 애정 관계를 보인다. 사랑한다고 말한다든지, 카메라에 대고 포즈를 취해준다든지, 질투를 보이는 등 진짜 연인에게 플러팅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여기서 애정 관계는 소비자의 권리라는 암묵적 계약 조항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간혹 암묵적 계약 조항이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팬들은 소비자로서 권리가 침해 받았다고 여겨 항의에 나선다. 아이돌 열애가 그중 하나다.
• 사랑이라는 죄
2024년 2월, K팝 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는 배우 이재욱과 연애 사실을 인정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전일 대비 3.5%가 하락해 시가 총액 667억 원이 증발했으며, 팬들은 소속사로 트럭 시위를 보냈다. 행사에는 홈마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 머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결국 카리나는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5주 만에 열애 상대와 결별했다.
팬들이 이토록 아이돌 연애에 반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한국의 팬덤 비즈니스가 실제로 유사 연애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팬은 아이돌과 애정 관계를 기반 삼아 유사 연애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팬덤이 아닌 다른 이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이러한 현상이 “팬들이 자신이 돈을 쓴 만큼 아이돌에게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 변화가 필요한 이유
K팝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며 영향력이 커지는 지금, 이제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K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은 “해외 K팝 팬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팬층이 더 지지적이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업계가 전통적인 규범에 덜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업계가 전통적인 규범에서 벗어나려면 소속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과거 소속사는 연애 금지령을 내리고 개인 휴대전화 압수해 연애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었다. 그리고 현재는 일대일 메신저 앱 등을 통해 아이돌과 팬 사이의 유사 연애를 유도하고 있다. 팬의 보상 요구가 점점 커지는 것도 소속사가 앨범•콘서트 가격 상승 등으로 소비 비용을 높이고 있어서이다. 정 평론가는 “팬들이 자신이 돈을 쓴 만큼 아이돌에게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며 “유사연애식의 소비는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소속사에서 자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팬들 또한 변화가 필요하다.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해외 팬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해외 몇몇 지역은 연애에 대해 국내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해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트래비스 켈스의 연애는 사과가 아니라 축하를 받았다. 슈퍼볼 경기 TV 시청자 5명 중 1명이 테일러와의 관계 때문에 캔자스시티 치프스를 응원할 정도다.
에스파 카리나의 사과문이 업로드됐을 때도, 대부분 해외 팬은 그녀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사과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일부 한국 팬도 해당 일에 대한 국제적인 보도에 당황하며 “K팝이 세계화된 지 꽤 오래되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면 국가적 망신이 된다는 사실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 참고문헌 ]
1) 김예랑. (2024년 03월 10일). 카리나, 사랑이 죄가 됐다…K팝 '유사연애' 비즈니스의 명암 [이슈+]. 한경뉴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30868297
2) 케이팝 아이돌의 연애는 왜 ‘위기’인가? - ‘유사 연애’를 넘어 ‘계약 연애’ 시장으로
3) Jake Kwon & Kelly Ng. (2024년 3월 24일). K-pop: How jealous 'super fans' try to dictate their idols' private lives. BBC. https://bbc.com/news/world-asia-68572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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