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희
[한국심리학신문=전세희 ]
"누군가는 겪었을 열아홉,
나에게 가장 가까운 스물아홉,
또 다른 사람은 지나쳤을 서른 아홉"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
19살에서 20살이 될 때, 29살에서 30살이 될 때, 사람들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곤 한다. 20살에서 21살이 되는 것과 29살에서 30살이 되는 것 모두 나이를 한번 더 먹는 것 뿐인데 우리는 왜 아홉 수의 나이에서 더 많이 고민하는 것일까. 나이를 더 중요시 하는 한국의 문화권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아홉수에 의미를 두는 보편적인 인식 때문인지 TVN에서 2014년에 '아홉수 소년'이라는 드라마도 방영되었다. 하지만 해외의 사례들을 보면 비단 우리나라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다. 아홉수의 비밀은 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아홉 수의 나이에서 넘어갈 때 더 많은 고민을 하는 이유는 앞으로 새로운 시작의 10년이 바로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Alter 와 Hershfield 의 연구에서 아홉 수의 사람들은 불륜이나 모험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고 마라톤에 참가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을 보고했다. 이후 Kim과 다른 연구자들은 2019년에 아홉 수에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하였다. 한 집단에게는 내일이 30살이나 40살의 생일이라고 가정하게 하였고 나머지 한 집단에게는 내일 하루가 어떨지 생각하도록 지시하였다. 실험 결과, 10년의 시작의 생일을 지각하도록 한 집단이 삶의 의미와 자기 성찰에 대한 수준이 높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였다. 이처럼 아홉 수를 지나 10년의 시작이 다가올 때 삶의 의미를 깊게 고민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며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나도 19살에서 20살에 재수라는 도전과 처음으로 맞이하는 20살이라는 숫자가 버겁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고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에게는 큰 짐이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가볍고 한없이 작아 보이는 일들조차 그 당시에는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되돌아보면 결국 다양한 일들을 겪고 자리를 잡아 그때의 고민은 어느정도 해결되었거나 실마리를 찾았을 것이다. 인생이 재미있는 이유는 우연히 겪었던 사건이 인생을 뒤바꾸는 계기가 되는 것처럼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심리학 이론이 있다.
계획된 우연 이론(Planned happenstance theory)
John D. Krumboltz가 제안한 진로 개발 이론인 '계획된 우연 이론(Planned happenstance theory)'이다. 해당 이론은 사회학습 이론의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고, 우연이라는 개념을 진로에 추가한 것이다. 우연(happenstance)이란 계획하지 않은 사건이나 기회, 행운 등을 의미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겨났을 때 우연이라고 부른다. Bright 등(2005)은 삶에서 계획되지 않은 우연적인 사건들이 진로 행동이나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후 Bandura가 1982년,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강조하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기회를 얻는 것이 인간의 삶의 경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계획된 우연 이론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계획된 우연 이론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개인은 삶을 살아가며 때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우연이라는 것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우연은 부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삶에서 크게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긍정적인 사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연한 사건을 배움의 기회로 전화할 수 있는 태도와 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의 다섯 개의 능력을 연마한다면 삶에서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Curiosity): 새로운 학습 기회를 탐색한다
인내심(persistence): 좌절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지속한다.
유연성(Flexibility): 태도와 상황을 변화시키고 상황에 맞게 대응한다.
낙관성(Optimism): 새로운기회가 올 때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위험감수(Risk taking): 불확실한 결과 앞에서도 행동을 수행한다.
우연한 계기로 하게 되었던 봉사 활동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직업으로 삼거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부서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더 나에게 맞는 일을 찾은 경우 모두 계획된 우연 이론으로 설명된다. 나 또한 우연히 대학교 1학년에 심리학 강의를 듣고 매료되어 심리학 전공을 선택한 이후에 너무나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이토록 오리무중이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그러니 성찰은 하되 지나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두고 싶다. 앞서 설명된 실험 결과들만 보아도 우리는 모두 같은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니 고민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마음껏 성찰해도 괜찮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때로는 우연한 계기로 한걸음 더 성장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다음 변화가 무엇일지 모르며,
예상할 수 없는 기회는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있다.
- Kathleen Norris
참고문헌
1) Kim, J., Schlegel, R. J., Seto, E., & Hicks, J. A. (2019). Thinking about a new decade in life increases personal self-reflection: A replication and reinterpretation of Alter and Hershfield’s (2014) finding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7(2), e27.
2) Alter, A. L., & Hershfield, H. E. (2014). People search for meaning when they approach a new decade in chronological ag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1(48), 17066-17070.
3) Mitchell, K. E., Al Levin, S., & Krumboltz, J. D. (1999). Planned happenstance: Constructing unexpected career opportunities. Journal of counseling & Development, 77(2), 11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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