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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지울 수 있다면? - 기억 조작과 생명공학: 유전자로 알아보는 트라우마
  • 기사등록 2025-06-09 08: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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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배정원 ]



“고통스러운 기억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출처=프리픽)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리기조차 싫은 과거가 있다.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트라우마는 일상생활을 무너뜨리고, 심한 경우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생명공학의 힘으로 특정 기억을 지우거나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나 소설의 상상이 아닌, 실제 실험실에서 이 상상이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



뇌 속 ‘기억’을 조작하는 기술, 어디까지 왔을까?



최근 신경과학과 생명공학의 융합은 인간의 기억을 분자 수준에서 탐색하고 조작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미국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연구팀은 β-아드레날린 수용체 차단제인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을 활용해, 트라우마 기억을 재구성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환자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릴 때 이 약물을 투여하면, 감정 반응이 점차 무뎌지면서 기억의 ‘감정적 강도’를 약화시키는 효과가 관찰되었다.


(출처=프리픽)


또한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신경생물학 연구진은 마우스의 기억 형성과 관련된 뇌의 부분인 해마에 광유전학(optogenetics)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특정 기억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빛을 이용해 특정 뉴런 집단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선택적으로 켜고 끌 수 있는 기술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트라우마는 치료 가능한가? – 정신의학의 새로운 전환점



트라우마는 단지 정신적인 상처가 아니라, 생리적 스트레스 반응이 신경계와 내분비계에 영향을 주는 ‘몸의 기억’이기도 하다. PTSD 환자의 경우, 특정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 과잉 활성화되는 편도체(amygdala)와 반대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상호작용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뇌 회로의 불균형은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되살리며 일상 회복을 방해한다.


이에 따라 생명공학적 개입은 단순한 ‘기억 삭제’가 아닌, 기억의 정서적 반응을 조절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치료적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치 기억의 상처를 지우기보다, ‘흉터’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출처=프리픽)




기억 조작 기술, 실제 치료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기억을 조절하거나 감정을 재구성하는 기술은 점점 더 실용적인 치료법으로 발전하고 있다. 프로프라놀롤은 이미 일부 PTSD 환자의 치료에 보조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심리치료와 병행할 때 회상된 기억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더 나아가 ‘기억 융합’(memory reconsolidation)이라는 접근법도 주목받고 있다. 이 방법은 환자가 트라우마를 회상하는 순간, 뇌가 기억을 다시 저장하는 과정을 이용해 정서적 내용을 재구성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기억 조작은 단순히 고통을 지우는 기술을 넘어, 기억의 의미를 바꾸고, 상처 위에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는 과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출처=프리픽)



기억을 지우는 것에 대한 윤리적 견해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실제 임상에 적용될 경우, 윤리적 쟁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인간의 기억은 단순한 정보 저장소가 아니라, 정체성과 삶의 맥락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개인의 성장을 이끌고 중요한 교훈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은 "기억의 선택적 삭제는 감정적 회피를 조장하거나, 새로운 트라우마를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출처=프리픽)


게다가 범죄 피해자나 전쟁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기억이 조작될 경우, 정의 실현이나 사회적 책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기억은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새로운 가능성과 경계 사이에서



트라우마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상처이자, 때론 가장 강한 회복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기억 조작 기술은 분명 정신의학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은 언제나 윤리적 판단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도록, 우리는 더 많은 논의와 감수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Kindt, M., Soeter, M., & Vervliet, B. (2009). Beyond extinction: erasing human fear responses and preventing the return of fear. Nature Neuroscience, 12(3), 256–258. https://doi.org/10.1038/nn.2271


2) Liu, X., Ramirez, S., Pang, P. T., Puryear, C. B., Govindarajan, A., Deisseroth, K., & Tonegawa, S. (2012). Optogenetic stimulation of a hippocampal engram activates fear memory recall. Nature, 484(7394), 381–385. https://doi.org/10.1038/nature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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