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수
[한국심리학신문=정연수]
“친구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는 게 너무 무서워요.”
중학교 2학년 A양은 상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A양은 쉬는 시간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털어놓았다. 외모에 대한 집착은 단순한 유행이나 사춘기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즉 ‘나는 부족하다’는 자기 인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상담 실습 현장에서 다양한 청소년을 만나며, 외모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단순한 겉모습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존중감의 위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불어 최근 한 연구를 통해 이 심리적 기제가 청소년의 문제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청소년의 심리적 불안감, 외모지향태도, 자아존중감과 문제행동의 구조관계」(박선태·임성옥, 2017)
는 국내 초·중학생 6,000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청소년의 외모지향성과 문제행동 간의 구조적 관계를 밝혔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심리적 불안감이 높을수록 자아존중감은 낮아지고, 문제행동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둘째, 외모지향태도가 강할수록 자아존중감은 오히려 높았지만, 문제행동 역시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셋째, 자아존중감이 높을수록 문제행동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외모에 대한 집착이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문제행동을 줄이는 데에는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외모지향성이 자아존중감의 ‘진정한’ 회복이라기보다,
'심리적 불안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왜 외모에 집착하게 될까?
현대 사회는 ‘외모지상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 SNS, 유튜브는 끊임없이 ‘예쁜 얼굴’과 ‘멋진 몸’을 이상적인 기준으로 제시한다. 특히 청소년은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는 만큼, 외부의 시선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기는 또래 집단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외모는 단지 생김새를 넘어 소속감과 존중의 조건이 된다. 실습 중 만난 여학생 B양은 “살쪘다는 말 한 마디에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못 했어요”라고 했다. 외모는 타인의 평가 도구이자 자기 존재감을 확인받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자아존중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핵심이다. 외모지향적 청소년은 자신의 가치를 내면에서 찾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의존한다. 그 결과, 겉모습에만 몰두하고 내면의 자아는 자꾸만 불안해진다.
문제는 외모지향성이 자아존중감의 회복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구에 따르면, 외모를 꾸미고 가꾸는 행위는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신뢰감과 수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외모에 집착할수록, 스스로를 ‘꾸며야만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내면의 공허함과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
실습 중 만난 한 고등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다이어트나 화장을 해서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땐 기분이 좋긴 한데요…
그런데 진짜 기분이 좋았던 건, 친구가 ‘너는 그냥 너라서 좋아’라고 말해줬을 때였어요.”
이 한 마디는 청소년 자아존중감 회복의 핵심을 관통한다.
겉모습이 아닌 존재 자체를 인정받는 경험, 그것이 바로 청소년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심리적 자양분’이다. 외모로 환심을 사거나 친구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진정한 자아존중감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소중하다’는 조건 없는 수용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문제는 이러한 무조건적 수용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SNS 속 비교, 외모 평가 문화, 그리고 성적 중심의 교육 환경은 청소년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경험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외적인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시도는 계속되지만, 마음속에는 ‘있는 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이 자리를 잡는다.
상담 장면에서도 “친구가 나를 싫어할까 봐 매일 화장을 해요”, “얼굴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면 그냥 아무 말도 못하게 돼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자기 인식은 곧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로 연결되며, 이는 학업 회피, 위축, 과잉행동, 심지어 자해나 자살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소년에게 묻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예뻐지고 싶니?”가 아니라,
“너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니?”라고.
심리학은 인간의 외적 행동보다는 내면의 의미를 보는 학문이다. 상담자로서 내가 느낀 가장 강력한 치료의 순간은, 청소년이 자신의 외모를 바꾸는 순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였다.
‘나를 꾸며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깨는 것.
그리고 ‘나는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자기 인식이 자리잡게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심리학적 개입이며, 상담자가 청소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도움이다.
상담자로서 나는 청소년의 외모 고민을 단순히 사춘기의 일시적인 민감성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말 속에는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거울 앞에서 “왜 나는 이렇게 생겼을까?”라고 묻는 것은 사실상 “나는 이대로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내면의 물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청소년의 외모지향성을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나 ‘습관’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외모에 대한 집착 이면에는 불안, 비교, 거절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미완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청소년은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외모를 ‘나’의 중심으로 오해하거나, 외모가 곧 나의 가치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담 현장에서는 외모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것을 단순한 꾸밈 행위로 보지 않고 내면의 자아 인식, 자아존중감, 또래 관계에서의 상처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하려는 세심한 시선이 필요하다.
실제로 실습 중 만난 많은 청소년들은 겉으로는 밝고 꾸며진 모습이었지만, 내면에서는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나를 외모로만 평가할까 봐 무서워요”, “화장을 안 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들은 자아의 핵심이 외적인 평가에 의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학교 현장에는 여전히 외모로 인한 비교, 따돌림, 별명짓기 등 ‘외모 평가 문화’가 존재하며, 이는 청소년의 자존감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럴 때 교사, 또래, 부모 등 주변 성인은 무엇보다 비판보다는 공감의 태도로 청소년을 바라봐야 한다.
특히 부모와 교사는 “왜 그렇게 외모에 집착하니?”라는 훈계보다 “그렇게 느낄 만큼 힘들었구나”라는 공감의 말을 먼저 건네야 한다. 그 공감의 한마디가 청소년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도 괜찮다’는 메시지로 전해질 수 있다. 진정한 자아존중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건 없이 받아주는 관계 안에서 자라난다.
청소년기는 ‘나는 누구인가’를 탐색하는 중요한 여정이다. 이 여정 속에서 외모는 자기 표현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외모는 내면을 드러내는 하나의 언어일 뿐, 나를 온전히 설명해주는 지표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단순히 “꾸미지 마라”고 말하기보다, 외모를 넘어 자신의 본질과 감정,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그 탐색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안전하고 지지적인 관계망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진정한 자아존중감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다시 말해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라난다.
참고문헌
1) 여천요,and 이숙정. "대학생의 외모지상주의 인식이 외모 신념과 외모 불안에 미치는 영향 : 외모 대화의 역할을 중심으로 ." 한국소통학보 21.4 (2022): 163-198.
2) 전주혜(Jeon Joo Hye),and 신명환(Shin Myoung Hwan). "청소년 인기 웹툰에 나타나는 외모지상주의 현상에 대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45.2 (2019): 93-130.3)
3) 이주영. "청소년 외모관심도와 외모만족도가 외모관리행동에 미치는 영향."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2021. 서울
4) 이미선,and 김희화. "초기 청소년의 외모기준 내재화와 외모불만족 간의 관계 : 자아존중감과 자기애의 중재효과." 청소년시설환경 11.4 (2013): 317-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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