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다미
[한국심리학신문=권다미 ]
“상담사님, 저희는 이제 대화도 없어요. 싸움도 없고요. 그냥, 같이 안 삽니다.”
많은 부부가 이처럼 '갈등조차 없는 거리감' 속에서 관계의 위기를 맞는다. 처음엔 육아와 생계, 일상에 치여 잠시 미뤘던 대화였는데, 어느 순간 서로의 삶에 아무 관심이 없어진다.
상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한 가지 패턴이 있다.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각자의 삶에 몰두하게 되며, 감정적 고립이 심화한다. 특히 ‘아이 때문에’, ‘일 때문에’, ‘배려 때문에’ 부부가 함께할 시간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틈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멀어짐과 오해, 외로움으로 채워진다.
우리는 왜 함께 보내야 하는가?
하버드대학교에서 75년간 진행된‘성인 발달종단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는 결론을 이렇게 맺었다.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도 명예도 아니라 ‘가까운 관계’의 질이다.” (George Vaillant, 2012) 이처럼 가까운 관계 중에서도 부부 관계는 가장 긴밀하고 밀접한 영향을 주는 연결이다. 배우자와의 안정적인 유대감은 정서적 참살이 뿐 아니라 신체 건강과 수명에도 큰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이런 유대감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정기적인 대화, 정서적 공유, 감정의 공감이 쌓일 때 관계의 깊이가 형성된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의도’이다.
많은 내담자는 “시간이 없어서 대화를 못 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같은 30분이라도 부부가 의도를 갖고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시간과,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보며 보내는 시간은 전혀 다르다. 감정의 대화는 단순히 정보 전달을 위한 대화가 아니다. ‘내가 오늘 이런 일이 있어서 기뻤어.’, ‘그 말에 상처받았어’, ‘네가 고생하는 걸 알지만, 나도 힘들었어’와 같은 감정의 진술이 포함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응은 해결책 제시가 아니라 공감과 인정이어야 한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 말 들었을 때 속상했겠네” 같은 말들이 서로를 다시 연결하는 접착제가 된다.
심리학자 수잔 존슨(Sue Johnson)은 그녀의 이론 *Emotional Focused Therapy (EFT)*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정서적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을 찾는다. 부부 사이의 안전기지는 감정적 개방과 반응성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가 말하는 ‘함께 보내는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동반이 아니라, 감정적 교류가 살아 있는 시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감정 교류가 없는 취미 생활, 배려일까 회피일까?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아내는 남편의 취미 시간을 “그럴 만하지”라며 이해한다. 남편은 “일주일 내내 일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라며 당연하게 여긴다. 언뜻 보기에 서로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이때의 ‘배려’는 서로에게 정서적 연결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회피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취미 활동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새로운 친밀감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배우자와의 감정 교류가 단절된 상태라면, 외부에서 마주치는 이해와 공감이 더 강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감정적 외도, 혹은 실제 외도와 같은 관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상담에서 유의해야 할 질문들
상담사로서 단순히 “요즘 대화하세요?”만 묻기보다, 그 대화의 질과 감정의 교류 여부를 탐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즘 서로의 하루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 나누시나요?” “배우자가 힘들다고 말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세요?” “마지막으로 ‘고마워’나 ‘미안해’라는 말을 주고받은 건 언제인가요?” 이런 질문을 통해 부부가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 의도적으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시간, 큰 연결
현실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는 건 쉽지 않다.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고, 업무는 쌓여 있고, 피로는 극에 달해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일수록 ‘함께 있는 시간’은 삶의 숨구멍이자 관계의 산소가 된다. 꼭 여행을 가거나 취미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일찍 재우고 그 날의 감정을 교환하는 대화, 차 한 잔 마시는 루틴, 매주 정해진 ‘감정 나누기 30분’이라도 만들면 된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 마음을 네가 중요하게 여긴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행위이다.
관계는 고장나기 전에 돌봐야 합니다.
이혼 상담을 받을 때 내담자들은 말한다. “그때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그냥 그 얘기, 들어줬으면 좋았을 걸…” 하지만 후회는 관계를 회복시켜 주지 않는다.
진짜 필요한 건, 아직 괜찮을 때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노력이다.
관계를 돌보는 태도, 그 자체가 사랑이다.
우리는 자주 말합니다. “아이 때문에 못 해요”, “지금은 너무 바빠서요.” 하지만 부부 관계는 아이가 다 컸을 때 돌봐도 되는 나무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매일 물을 주고 가지를 다듬어야 하는 살아 있는 존재이다. 상담사로서 우리는, 내담자들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임을 깨닫고, 감정을 교류하고 시간을 함께하는 선택을 하도록 돕는 존재이다.
"행복한 부부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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