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림
[한국심리학신문=유예림 ]
Unsplash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란 어떤 공간일까? 어린이들은 왜 더 이상 놀이터에서 놀지 않으려 할까? 당연하게도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는 더 이상 흥미로운 공간이 아니며 자극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놀이 공간은 어떨까? 한국 최초의 놀이터는 1935년 서울 중구 인현동에 일본인들에 의해 건설된 ‘요정 아동 공원’이다.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을 겪은 뒤 70년대가 되어서야 어린이들의 놀이 공간이 주목받게 되었고 놀이터가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과거 놀이터는 안전장치가 거의 없고 많이 녹슬어 있어 자칫하다간 파상풍에 걸리거나 뼈가 부러지는 일이 잦았다. 당시 어린이들은 항상 높은 철봉이나 그네 위에서 뛰어내리고 싶어 했고 자전거에 앉은 채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려 하거나 놀이터의 지붕 위에 기어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위험한 놀이시설을 즐기던 어린이들은 성인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전한 놀이터는 생각보다 “안전하게 아이들을 보호” 하지 못했다. 위험 감수 놀이를 통해 발달하고 자극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발달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Ellen Beate Hansen Sandseter, Ole Johan Sando, Rasmus Kleppe라는 세 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유아교육기관에서 야외 놀이 환경이 어린이들의 ‘위험 감수 놀이(risky play)’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위험 감수 놀이
위험 감수 놀이란 신체적 부상의 위험을 동반하지만 흥미를 유발하는 놀이를 말한다.
1. 높은 곳에서의 놀이 (Play with great heights):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균형을 잡는 등의 활동
2. 고속 놀이 (Play with high speed):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충돌 위험이 있는 놀이 (예: 자전거, 미끄럼틀)
3. 위험한 도구와의 놀이 (Play with dangerous tools): 날카로운 도구나 무거운 도구를 사용한 놀이
4. 위험 요소 근처에서의 놀이 (Play near dangerous elements): 물, 불 등 위험한 요소 근처에서의 놀이
5. 거친 신체 놀이 (Rough-and-tumble play): 서로 간의 격렬한 신체 접촉이 포함된 놀이
6. 혼자 탐험하는 놀이 (Play where children go exploring alone): 성인의 감독 없이 혼자 또는 소그룹으로 탐험하는 놀이
7. 충격을 주는 놀이 (Play with impact): 반복적으로 충돌하거나 부딪히는 행동
8. 간접적 위험 체험 (Vicarious play): 다른 아이들이 모험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스릴을 느끼는 놀이
연구자들은 위험 감수 놀이가 단순한 모험을 넘어서 신체 활동 증가, 운동 능력 발달, 공간 지각 능력 향상, 위험 평가 및 관리 능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위험에 도전하고 극복할 때 느끼는 성취감이나 즐거움은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최근 몇십 년 사이 어린이들은 실내에서 텔레비전 보기, 전자기기 사용하기와 같은 정적인 활동에 노출되었다. 야외에서 자유롭고 격렬하게 신체 활동을 즐길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위험을 탐색하고 도전하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이렇듯 위험한 놀이 경험을 제한 당한 아이들은 단기적, 장기적으로 불안감이나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물리적 놀이 환경
어린이들이 대부분의 낮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유아 교육 기관은 어린이들이 자율적인 위험 감수 놀이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장소들이다. 이런 물리적 환경들은 놀이 유형, 신체 활동 수준, 창의성, 사회적 상호 작용 등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보통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등반 시설 (나무나 암벽), 미끄럼틀, 가파른 자연 요소와 같이 비표준화되고 위험한 놀이 환경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아 교육 기관에서는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 방침 상 위험한 놀이 환경은 제한되고 제거될 수밖에 없다.
위험 감수 놀이 실험
llen Beate Hansen Sandseter, Ole Johan Sando, Rasmus Kleppe는 유아 교육 기관에서 어린이들이 자유 놀이 상황 중 어떤 방식으로 물리적 환경을 활용하는지 조사하였다. 자유 놀이를 위해 어린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할지, 어디에서 놀지, 누구와 상호작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하였다. 해당 실험은 노르웨이의 남부 4개, 중부 3개, 북부 1개의 유아 교육 기관을 선택하여 진행되었고 각 기관은 평균 85명 정도의 어린이가 재원 중이었다. 유아 교육 기관의 건축 연도는 1989년부터 2016년 사이에 이루어진 공간들을 섭외하였다. 각 기관의 야외 놀이 공간은 도심의 800㎡ 넓이 아스팔트와 고무 재질 바닥의 공간부터 최대 13,000㎡의 숲, 언덕, 관목 등 자연 그대로의 자연 친화적 공간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모든 기관은 공통적으로 그네, 미끄럼틀, 모래 놀이터, 등반 놀이 시설과 같은 기초적인 고정식 놀이 기구를 가지고 있었고 삼륜차, 양동이, 컵, 삽 등 공통된 놀이 재료들을 구비해 놓았다. 연구 대상 아동들은 각 기관에서 부모의 동의를 받은 어린이 중 각 여자와 남자 5명씩 총 10명을 무작위로 선정했으며 첫 번째 데이터 수집이 이루어진 2017년에는 80명, 두 번째 데이터 수집이 이루어진 2018년에는 79명이 참여하였다. 최종 분석에서는 두 번의 데이터 수집에 모두 참여한 74명과 한 번의 데이터 수집에만 참여한 12명을 포함해 총 86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평균 연령은 1차 데이터 수집에서 3.8세, 2차 데이터 수집에서 4.7세를 기록하였다.
데이터 수집은 매 데이터 수집 일마다 두 명의 어린이를 무작위로 선택하여 피실험자 어린이의 야외 자유 놀이 모습을 2분 길이의 비디오 촬영으로 기록하였고 한 어린이가 2분 촬영 후 6분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다른 어린이와 교대로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화장실 사용이나 옷 갈아입기와 같이 민감한 상황은 촬영하지 않았으며 해당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관찰을 중지시켰다. 현장 연구자는 필드 노트를 작성하여 프로토콜 준수를 확인하였고 각 기관의 공동 연구자인 해당 기관의 교사가 실제 촬영을 담당했다. 어린이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이기 때문에 부모와 어린이 모두에게 연구 시작 전에 촬영의 의미와 절차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고 아동이 촬영을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안내하였다.
실험 결과 자연환경, 고정식 놀이 기구, 기타 고정 구조물, 바퀴 달린 장난감은 아이들의 위험 감수 놀이를 촉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고속 놀이와 높은 곳에서의 놀이는 주로 고정 기구나 재료 사용과 관련되었으나 거친 신체 놀이는 개인의 성별과 나이에 더 큰 영향을 받음이 밝혀졌다. 이 실험 결과를 통해 야외 놀이 공간 및 재료를 설계할 때 아이들이 도전적이고 자율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놀이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성하는 것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말했다.
자신의 아이가 집 밖에서 놀다가 크게 다쳤을 때 아이의 보호자는 당연히 아이를 다치게 한 놀이 기구를, 같이 놀던 친구를, 해당 상황을 막지 못한 보호 담당자를, 또는 자신을 탓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위험 요소들이 있어야만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안전하고 시시한 놀이터에 앉아서 핸드폰이나 게임기를 가지고 노는 것보다는 덜 안전하지만 재미있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을 제안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위험을 경험하게 놔주는 것은 어떨까.
참고문헌
1)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n.d.). [밀물썰물] 놀이터. 부산일보.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111418360830644
2) Ellen Beate, H. S., Sando, O. J., & Kleppe, R. (2021). Associations between Children’s risky play and ECEC outdoor play spaces and materials.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18(7), 3354. doi:https://doi.org/10.3390/ijerph18073354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yelimyoo96@naver.com
요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전부 전자기기가 빠지지 않고 곁에 있더랍니다. 그런 모습이 제 어렸을 적 모습과는 달라 아쉬움이 들면서 걱정도 되더라고요. 어른 눈에는 위험해 보여도 아이들이 몸을 쓰며 노는 이유를 실험을 근거로 자세하게 풀어주신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 기사에서 어린이 놀이터의 ‘과도한 안전 중심 설계’가 오히려 아이들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는 중요한 문제를 심도 있게 조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위험 감수 놀이’라는 개념을 학술적으로 소개하고, 구체적인 연구 실험 결과와 함께 놀이 환경과 아이의 행동 간 관계를 자세히 설명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였습니다. 특히 놀이의 자율성과 위험 탐색이 신체 발달뿐 아니라 정서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은 독자의 인식을 환기시키며, 실제 연구자의 이름, 연구 방식, 표본 수와 나이, 장비 등도 충실히 소개된 점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