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수
[한국심리학신문=정연수]
ADHD, 행동 그 너머의 이야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학령기 아동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신경발달장애 중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약 5%의 아동이 이 장애를 겪고 있다. ADHD는 단순한 산만함을 넘어서, 주의력 부족, 충동성, 과잉행동이라는 특징적 증상들로 인해 학업 수행과 또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만약 조기에 적절한 지원과 중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어려움은 청소년기와 성인기까지 이어져 자존감 저하, 사회적 고립, 직업적 문제 등 장기적인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학급당 1~3명의 ADHD 아동이 있을 정도로 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ADHD에 대한 개입은 여전히 약물치료와 행동조절 중심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기적인 증상 완화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아동 개개인의 내면적 경험과 정서, 창의성 발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 심리학계에서는 ADHD 아동을 ‘통제하고 제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표현하고 이해받아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술치료가 주목받고 있는데, 미술치료는 언어적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이 자신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자기 자신과의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특히 미술치료는 ADHD 아동이 충동적이고 과잉행동적인 특성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에너지와 창의성을 긍정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한다. 다양한 색채와 형태, 질감을 활용해 아동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상담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아통합과 자기효능감을 키워나간다.
이처럼 행동 이면에 숨겨진 아동의 심리적, 정서적 욕구에 주목하는 접근은 ADHD 개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아이들이 보다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로 만난 마음: 주의력과 자기표현의 통로
조선대학교 황하얀의 석사학위 논문에서는 ADHD 진단을 받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을 대상으로, 미술치료가 주의집중력과 자기표현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대상은 선택적 함구증을 동반한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 A군으로, 총 60회기에 걸쳐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한 단일사례연구로 진행되었다.
A군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는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교실과 같은 일반적인 학습 환경에서는 주의집중이 급격히 저하되었으며, 언어적 표현도 단답형에 머무르고 감정 표현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보였다. 그러나 미술치료 과정에서 A군은 점차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시각적 매체를 활용한 자기표현이 활발해질수록 주의집중의 지속시간 또한 점진적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치료 후반에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도 눈에 띄는 개선을 보였으며, 이는 미술이 비언어적 매개로서 아동의 내면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본 기자 역시 학교 위(Wee)클래스에서 유사한 조건의 ADHD 3학년 남아를 대상으로 10회기 상담 실습을 진행하며 유사한 임상적 양상을 관찰한 바 있다. 아동은 언어적 소통보다는 시각적 활동에 더 높은 흥미와 안정감을 보였고, 블록이나 그림 그리기와 같은 활동을 통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정과 욕구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주의집중이 산만한 듯 보였던 행동도, 아동의 세계 안에서는 분명한 흐름과 규칙이 있었으며,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개입될 때 상담자-아동 간의 관계 역시 더 안정되고 깊어졌다.
이러한 경험은 ADHD 아동에게 있어서 ‘주의력 부족’이라는 표면적 문제 너머에 ‘표현되지 못한 감정’과 ‘이해받지 못한 사고방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미술은 이러한 내면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며, 조절 중심의 접근이 놓치기 쉬운 아동의 감정과 자기표현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본 기자의 실습에서는 전통적인 미술치료 기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DIY 미술 키트’를 활용한 맞춤형 미술활동을 도입하였다. DIY 키트란 아동이 직접 조립하거나 색칠하며 완성하는 활동으로 구성된 창작 도구로, 정해진 절차를 따르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활동은 명확한 구조 안에서 성취감을 빠르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며, ADHD 아동의 집중 유지를 돕는 효과적인 치료적 자극제가 된다.
‘나만의 동물 캐릭터 만들기’, ‘감정 색칠 병풍 꾸미기’, ‘기분 날씨 스티커 북’ 등은 단순한 미술활동처럼 보이지만, 실은 감정 명명과 투사적 표현을 유도하는 정교한 치료 도구로 작용한다. 특히 아동이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경험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획득하고, 과제에 몰입하는 과정은 자발적 표현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이는 자기표현력의 질적 향상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주의력 향상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준다.
DIY 키트는 아동의 주도성과 선택권을 존중하면서도, 활동의 틀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 불안정하거나 충동성이 강한 아동에게 유익하게 작용하며, 무의식적인 저항이나 과잉반응을 완화하는 데도 기여한다. 기존의 자유화 중심 미술치료에 비해 시각적 흥미를 빠르게 유발하고, 활동의 목표가 명확하여 아동의 참여 동기를 높이는 데 강점이 있었다. 또한 재료가 비교적 간단하고 구성이 명확해, 교실 환경이나 위(Wee)클래스 같은 일상적 공간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용성 또한 크다.
황하얀의 연구에 따르면, 미술치료 프로그램은 총 다섯 단계로 체계화되어 있다.
① 라포 형성 및 긴장 완화,
② 자기 이해 및 감정 표현 촉진,
③ 집중력 향상과 감정 정화,
④ 자발적 표현의 확장,
⑤ 주의력 유지와 자기표현의 강화의 단계로 구성되었다.
연구 대상 아동은 초기에는 짧은 주의 집중과 제한적인 언어 반응만을 보였지만, 회기가 누적됨에 따라 표현의 밀도와 내면적 깊이가 뚜렷하게 증가하였다. 아동은 그림 속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사하며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이는 단순한 조형물 제작을 넘어 자기이해의 통로가 되었다. 치료 후반기에는 K-HTP(인물 - 집 - 나무) 검사, 나무그림 검사, 자기표현 척도검사 등을 통해 주의력과 정서표현의 뚜렷한 향상을 정량적 · 정성적으로 모두 입증할 수 있었다.
미술치료가 ADHD 아동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창의적 활동을 제공해서가 아니다. 그 심리적 의미는 보다 깊은 층위에 닿아 있다.
첫째, 미술은 언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적 자기표현이 미숙하거나 정서적으로 위축된 아동도 부담 없이 감정을 외화할 수 있다.
둘째, 미술활동은 ‘집중-반복-완성’의 과정을 통해 인지적 몰입과 성취경험을 자연스럽게 제공하며, 이는 자기조절 능력 향상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셋째, 치료자는 작품이라는 ‘제3의 매개체’를 통해 아동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동이 판단받지 않고 이해받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아동은 점차 자기 자신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특히 DIY 미술 키트는 이러한 치료적 경험을 더욱 촉진하는 도구로 기능하였다. 아동은 주제를 구조화된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선택과 해석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를 통해 통제감과 창의성, 안정감과 자율성을 동시에 경험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도구는 아동이 외부 지시가 아닌 자기 내면의 주도성에 의해 움직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며, 치료의 핵심 목표인 자기효능감과 정서조절력의 향상에 기여하였다.
앞으로 ADHD 아동을 위한 미술치료는 보다 체계적인 프로그램 개발, DIY 기반 도구의 다양화, 그리고 교실이나 상담 현장에서 쉽게 적용 가능한 형태로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또한 자기표현에 어려움을 보이는 아동에게 미술은 단순한 치료기법을 넘어, ‘자기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ADHD 아동은 단지 산만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간절한 욕구를 지닌 존재이며, 그 표현 방식이 주변의 기대와 다를 뿐이다. 미술은 그런 아이들에게 말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언어이며, 치료자는 그 언어를 해석하고 공감해주는 동반자이자 통역자이다. 이 새로운 가능성의 장을 열어주는 미술치료가, 앞으로 더 많은 아동에게 닿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
1) 김도희 and 전영희. (2014). ADHD 성향 아동의 충동성 감소를 위한 미술치료 사례연구. 미술치료연구, 21(6), 1323-1346.
2) 김도희 and 전영희. (2024). ADHD 경향을 지닌 아동의 정서행동문제 감소를 위한 미술치료: 단일사례 연구. 예술심리치료연구, 20(4), 1-32.
3) 박서연. (2024). 미술치료를 활용한 사회기술훈련 프로그램의 적용 : ADHD 아동의 단일 사례연구. 문화기술의 융합, 10(5), 465-472.
4) 김영란 and 장성호. (2021). ADHD성향 아동에 대한 미술치료 효과: 취학 전 아동 단일사례를 중심으로. 부모교육연구, 18(1), 65-92.
5) 강민경, 이근매 and 김진희. (2019). 활동중심 집단미술치료가 ADHD 성향 아동의 주의집중력 및 자기조절에 미치는 효과. 정서·행동장애연구, 35(4), 167-188.
6) 조지 J. 두파울(George J. DuPaul)의 『ADHD 학교상담원서』(김동일 역, 학지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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