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영
[한국심리학신문=권주영 ]
https://www.youtube.com/watch?v=WjY9VkYs1xQ&list=PLL1qZqiuec_T3hd2acyx2RNV9g9-wSS8t&index=4넷플릭스가 지난 6월 20일 공개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예상을 뛰어넘는 글로벌 흥행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K-POP 걸그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서울의 전통적인 배경과 악령 퇴치라는 독특한 설정, 감각적인 OST로 세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극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 루미의 정체성 갈등은 단순한 성장서사를 넘어 인간의 내면 심리를 조명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루미는 악귀들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모아 세상을 지배하려는 귀마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걸그룹 ‘헌트릭스’의 리더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 자체는 아이러니하다. 헌터인 어머니와 악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본질적으로 두 세계 사이의 경계에 존재한다. 어머니를 잃고 헌터 셀린의 보호 아래 자란 루미는 자신 안의 ‘악귀성’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무리 숨기려 해도 악귀의 문양은 점점 그녀의 몸에 퍼지고 결국 목소리까지 위협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루미는 자신의 진실을 동료들에게 털어놓지 못한다. 조이와 미라가 목욕탕에서 함께 놀러가자고 권했을 때, 자신의 비밀을 밝히고 싶었던 그녀는 셀린의 만류로 끝내 입을 다문다. 이 장면은 단순한 거절의 서사가 아니다. 이는 바로 자기노출(Self-disclosure)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 그리고 타인의 수용 여부에 대한 복잡한 심리의 반영이다.
자기노출이란 무엇인가: 단순한 고백 그 이상의 의미
Jourard는 자기노출을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 생각, 과거 경험 등을 타인에게 꾸밈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자기노출은 단지 고백의 행위가 아니라,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첫걸음이다.
루미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까지 겪는 갈등은 이러한 자기노출 이론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자신의 존재가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말을 삼킨다. 이는 바로 자기노출이 항상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기노출의 심리적 순기능: 정화와 이해, 그리고 회복
자기노출이 가지는 심리적 효과는 여러 이론으로 설명된다. 감정정화와 인지과정 이론(Catharsis & Cognitive Processing Theory)은 인간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정화되고, 동시에 그 경험을 새롭게 바라보는 통찰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Pennebaker의 억제-직면 이론 또한 주목할 만하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억제할 경우, 이는 반복적인 침입 사고와 회피 행동으로 이어지며 결국 심리적 불안을 유발한다. 반면 고통과 직면하고 그것을 표현하게 되면, 해당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게 되고 신체적·정서적 건강 증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루미는 결국 자신의 비밀을 노래로 승화시킨다. 이는 단순한 자기고백이 아니라, 그녀가 겪은 정체성 혼란을 음악이라는 예술적 방식으로 드러낸 자기노출의 한 형태다. 그 결과, 그녀는 팀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귀마에게 지배된 멤버들을 구해 최종 전투에 나선다. 이는 자기노출이 단지 ‘고백’의 차원을 넘어, 정체성과 감정의 복원이라는 복합적 작용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자기노출은 항상 옳은가?
자기노출이 가지는 심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자들은 무조건적인 자기노출의 위험성 또한 경고한다. 한 예로, 글쓰기를 통한 언어적 자기노출 과정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며, 특히 심각한 심리적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글쓰기를 통한 언어적 자기노출을 실시하였을 때, 오히려 순기능 적 효과가 없거나 더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아닌 외상경험이 있는 (예: PTSD환자) 사람들 또는 심각한 트 라우마(trauma)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을 표출하는 언어적 자기노출을 실행할 때에는 자기노출 후 고통스러운 생각과 정서를 충분히 통합할 수 있도록 심리적지지 혹은 개입 프로그램의 준비와 함께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루미의 사례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녀가 악귀의 문양을 드러냈을 때,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충분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동료들이 충격을 받거나 배척할 수 있고, 자신에게 돌아올 사회적 불이익을 예측했기에 쉽게 고백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자기노출은 용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전략과 분별이 필요한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자기노출의 다양한 방식: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
심리학은 자기노출이 단지 말이나 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무용, 그림, 음악, 움직임 등의 비언어적 자기노출 방식은 때로 말보다 더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무용/동작 치료(Dance/Movement Therapy)는 감정 표현과 심리 치유의 한 방법이다.
루미의 경우, 그녀가 택한 자기노출의 방식은 ‘노래’였다. 이는 단순한 대화보다 더 폭넓은 감정의 흐름을 전달하고, 멤버들에게도 더욱 깊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SNS, 그림, 영상, 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곧, 자기노출이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무리: 말하지 않아도 되는 용기, 또는 말하지 않기로 한 용기
우리는 때로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할 때가 있다. 그 숨김이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루미가 자신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의 삶과 팀 전체의 안전을 고려한 어쩌면 책임감 있는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자기노출은 단순히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판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와 같은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지금, 나는 나를 드러내야 하는가? 아니면 침묵해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느 쪽이든 스스로에게 솔직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최민구. (2016). 자기노출 유형이 정서, 주관안녕 및 건강지각에 미치는 영향: 행동적 및 통합적 자기노출의 효과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대전대학교 대학원).
연합뉴스. (2025년 6월 23일). 넷플릭스 ‘K팝 데몬 헌터스’, 글로벌 흥행 속 비결은 ‘스토리’.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50623100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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