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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영화 1: 침묵하는 자의 운명 - 타자화와 희생양 메커니즘이 이루어진 덩케르크에서
  • 기사등록 2025-07-23 08: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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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창희 ]


출처: 톱클래스"전쟁에서 철수는 승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덩케르크의 철수는 승리지요"

 

살아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덩케르크 해변의 병사들에게 전달하는 처칠의 연설문이었다.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하는 전쟁 영화의 주된 목적은 앞의 상대를 무찌르고 힘내어 나아가 싸워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다. 전쟁의 근본적인 목적 자체가 그러하기도 하고, 승리자들의 영웅적 심리를 묘사하면 대중들은 통쾌함과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덩케르크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저 살아남고 생존하는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철수라는 새로운 승리



출처: 위키백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독일의 진격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반격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1940년 5월 20일 영국 해외 파견군, 프랑스 제1육군, 벨기에군은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되고 만다. 연합군의 유일한 희망은 영국으로 건너가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뿐이었다. 독일군은 영국으로의 도해를 막기 위해 유보트와 공군을 투입해 연합군을 괴멸시키려 했다. 영국은 연합군이 괴멸될 경우 조건부 항복도 고려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독일군이 무려 3일간 진격을 멈추는 사이, 영국 정부는 '다이나모 작전'을 개시한다. 이때 민간 선박들까지 동원되어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되었던 40만 명의 연합군이 기적적으로 철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 해안에서의 성공적인 철수는 이후 히틀러의 독일군을 무찌르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극한에서 깨어나는 원초적 자아



출처: imbc

인간의 생존 본능은 이 영화에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승리하는 내용도 싸우는 이야기도 아닌 후퇴하는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은 그저 이 세상에 더 존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높은 파도와 독일군의 공격으로 눈에 보이는 영국에 다다르지 못하고 덩케르크에 계속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영화는 바다, 하늘, 육지로 구성된 3개의 스토리라인을 통해 하늘에서 적기와 맞서는 조종사, 바다를 건너는 민간인들, 해변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병사들의 절박한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시간대가 다르게 흘러가면서도 모두 하나의 목표, 즉 '살아남기'를 향해 수렴하는 구조는 생존이라는 원초적 욕구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생존 본능은 단순히 개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위기가 심화될수록 집단 내에서는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또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바로 '다른 존재'를 찾아내고 그를 위험의 원인으로 지목하려는 충동이다.

 

침묵이 만들어낸 타자화



배 안에 숨은 연합군영화 후반부, 아무도 없는 좌초된 배에 숨어 밀물을 기다리며 탈출하려던 연합군들에게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독일군의 지속적인 사격으로 배에는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한 병사가 무게를 줄여야 배가 뜰 수 있다고 제안하는 순간 배 안의 분위기는 급변한다. 누군가는 나가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형성되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하이랜더 분대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깁슨으로 향한다.

 

그가 표적이 된 이유는 그저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침묵은 더 이상 개인의 성향이나 선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알렉스는 깁슨이 "영어를 못하거나 독일식 억양"일 것이라며 독일 스파이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순전한 추측에 불과했지만, 생존의 위기에 몰린 집단에게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논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시작된 타자화의 과정은 집단의 불안이 심화될수록 더욱 가속화되어 가며, 같은 소속이라는 유대감으로 결속한 하이랜더 분대원들은 객관적 증거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의존하여 깁슨을 경계 밖으로 밀어내고 모든 책임을 전가할 타자를 만들어낸다.

 

불안의 출구를 찾기 위한 희생양 메커니즘



의심 받는 깁슨깁슨이 프랑스어로 말하는 순간, 그는 적이 아니라 동맹국 군인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미 희생양으로 선택된 그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집단은 "영국군 옷을 훔친 프랑스 놈"이라는 규정을 통해 새로운 비난 논리를 만들며 그가 여전히 배제되어야 할 존재로 남는다. 사실이 밝혀져도 희생양 메커니즘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희생양 메커니즘은 집단의 불안과 위기 상황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특정 개인에게 전가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배 안에서 물이 차오르는 절망적 상황에서 하이랜더 분대원들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는 독일군의 사격과 배의 손상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지만, 이는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다. 반면 깁슨을 내쫓는 것은 그들이 직접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깁슨을 내보내면 배가 뜰 것이라는 믿음은 실제로 근거가 부족하지만 집단에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심리적 희망을 제공했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거울



출처: 중앙포토덩케르크의 배 안 장면은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민낯을 보여준다. 깁슨의 침묵이 의심의 씨앗이 되고, 집단의 불안이 커질수록 객관적 증거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판단을 지배한다. 진실이 밝혀져도 이미 만들어진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섬뜩한 것은 이러한 타자화와 희생양 찾기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다른' 누군가를 찾아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언어가 다르거나, 행동 양식이 다르거나, 단순히 말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도 누군가는 '우리'가 아닌 '그들'로 분류된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영웅적 서사 대신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줌으로써 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생존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라는 대사는 우리가 평상시 가진 도덕적 기준들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한다. 결국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우리는 언제까지 변명 뒤에 숨어 있을 것인가?

 

 

참고문헌

1) 이종원. (2015). 희생양 메커니즘과 폭력의 윤리적 문제: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과 희생양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DBpia.

2) 최종수. (2017).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영화 ‘덩케르크’ 명대사 11. 인사이트.

(https://www.insight.co.kr/news/114145)

3) 이창석. (2025). 덩케르크, 시간, 두려움, 인간 존엄. 미디어 파인.

(https://www.mediaf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727)

4) 민가영. (2014). '타자화'와 '자기고립적 차이'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의 탐색: '위계 속의 팀웍'에 대한 직면. DBpia.

5) 이일환. (2017). 트럼프 시대/브렉시트 현상과 타자화.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7020810587867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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