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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을 타고 스며드는 한 줄기 햇빛. 

반쯤 내려진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빛은 교실 전체를 

어색한 반음영 속에 가두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하림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노란색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날, 교무실로 오지 않았다면 넌 안 다쳤을 거야.”


윤설화의 필체였다.

하림은 포스트잇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귓가를 맴도는 건, 오래전 운동장에서 울리던 웃음소리.

그리고 그 웃음이 비명이 되어 끊겼던 날의 기억.


“왜 지금에서야…”


그는 떨리는 손으로 포스트잇을 떼어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하림은 텅 빈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조차 메아리치는 그 공간은, 

마치 이 학교가 더 이상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처럼 느껴지게 했다.


“하림아.”


정이서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이서는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지금… 고윤태랑 정면으로 부딪힐 생각이야?”


하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딪혀야만 해. 더 이상 도망치면… 난 나를 용서할 수 없어.”

“하지만 너도 다칠 수 있어.”


그 말에 하림은 고개를 돌렸다. 

이서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이서야. 나… 그날 진실을 봤어. 그리고 그 진실 앞에서, 너무 오랫동안 침묵했어.”


이서의 눈가가 흔들렸다.


“하림… 설화는…”

“설화는 그날 나를 구하려 했던 거야. 

나 대신 무너졌고, 나 대신 아팠고… 지금도 그 고통 속에서 혼자 싸우고 있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뜨린 건, 

계단 아래쪽에서 들려온 낮고 기괴한 웃음소리.


“역시… 너희 둘은 계속 짜증나게 의롭지.”


고윤태였다. 

피로 물든 셔츠, 그러나 표정은 오히려 더 차분해진 듯했다.


“다들 똑같아. 너도, 윤설화도, 정이서도. 정의롭고 착한 얼굴로, 결국엔 날 밀어냈잖아.”


하림은 조용히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윤태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림은 이제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고윤태. 넌 밀려난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진 거야.”

“입 닥쳐.”


윤태가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려는 순간, 하림은 발을 내딛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그 사이, 정이서가 막아서섰다.


“멈춰, 윤태. 더는 안 돼.”


잠시 흐른 정적. 


그 안에서 윤태는 멈췄다. 

흐릿한 눈동자로 이서를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어깨가 떨렸다.


“…돌아갈 수 있을까.”


그건 누구에게 묻는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림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와 창문이 삐걱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속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침묵의 교실은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작가의 말 :

37화까지 달려온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번 화는 하림의 결단과 윤태의 무너짐, 

그리고 이서의 용기가 교차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침묵의 교실》은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라, 

상처와 침묵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38화를 통해 그 진실의 일부가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윤설화의 과거가 좀 더 명확히 드러나게 됩니다.

계속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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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11 09: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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