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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강지은 ]


누구에게나 자주 듣는 음악이 있다. 슬픔이 밀려올 때면 무심코 플레이리스트를 켜고, 반복되는 멜로디에 마음을 실어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곡이 나 대신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하다. 그렇게 이어폰 속 음악은 하나의 피난처가 되어준다.



음악이 단순한 소음을 넘어서 마음을 위로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감정, 기억, 그리고 몸의 리듬과 맞닿아 있다.



음악은 ‘기억된 감정’을 다시 꺼내준다


 

특정한 음악을 들었을 때, 과거의 장면이 떠오르거나 어떤 감정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마치 타임머신처럼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 이는 음악이 단순한 청각 자극을 넘어서, 뇌 속 ‘감정 기억 회로’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조건화된 감정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특정한 음악이 어떤 감정이나 상황과 반복적으로 함께 경험되면, 그 음악만으로도 당시의 감정이 자동으로 불러일으켜지는 것이다. 예컨대, 유년 시절 가족 여행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나중에 다시 들었을 때 그때의 따뜻함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어떤 노래는 이별 당시의 공기까지도 생생히 되살려 준다.

 

이처럼 음악은 기억을 자극하고, 그 기억에 담긴 감정까지 함께 꺼내주기 때문에, 듣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으로 큰 위안을 주게 된다. 마음이 불안정할 때 익숙한 음악을 찾는 이유는, 결국 익숙한 감정 안에서 잠시 쉬고 싶다는 본능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몸의 리듬이 음악에 동조할 때


 

그런데 음악은 단지 감정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도 음악에 반응한다. 음악의 리듬, 속도, 강약은 뇌파와 심장박동, 호흡속도와 같은 생리적 리듬에 영향을 준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엔트레인먼트(entrainment)', 즉 동조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느리고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면, 우리의 심장 박동도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긴장된 근육은 이완되며, 뇌파 역시 안정적인 상태로 바뀐다. 이는 우리가 물리적으로도 ‘안정됨’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다. 반대로 빠르고 격렬한 음악은 각성과 흥분을 유도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반응이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별다른 의식적 노력 없이도, 우리는 음악에 맞춰 호흡을 조절하고, 리듬에 따라 몸의 상태를 바꾸어가며 감정을 조절하고 있는 셈이다.



음악은 감정 표현의 또 다른 언어다


 

때때로 어떤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누구에게도 정확히 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 이럴 때 음악은 말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한 언어가 된다.

 

심리학자 제임스 그로스(Gross, 1998)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 중 하나로 ‘표현’‘재평가’를 강조했다. 음악은 바로 이 두 가지 방식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억눌린 감정을 밖으로 꺼낼 수 있고, 동시에 음악 속 가사나 분위기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평가’할 수 있다.

 

슬픈 노래를 들으며 오히려 위로받는 이유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음악은 그런 감정들을 해소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안전한 통로가 되어준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시작된 음악이, 또 다른 누군가의 감정을 다독이는 이유다.



익숙함이 주는 통제감


 

우리가 위로받고자 할 때 새롭고 낯선 음악보다 익숙한 곡을 먼저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불확실성과 변화가 많은 일상 속에서, 예측 가능한 음악은 우리에게 통제감을 준다. 다음에 어떤 멜로디가 나올지, 어떤 가사가 이어질지를 알고 있는 상태는 우리 뇌에게 일종의 ‘안정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는 감정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미 여러 번 들었던 곡은 그 안에 담긴 감정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감정을 소모하거나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감정의 방향이 정해진 음악은 복잡한 현실 속에서 감정을 정리하는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해준다.



당신의 음악은 당신을 닮았다


 

결국, 특정한 음악이 우리를 안정시키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의 감정, 기억, 리듬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은 단순히 귀에 익은 소리 그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의 조각들이고,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는 방식이며, 어지러운 하루의 끝에서 마음을 눕히는 작은 의식일지도 모른다.

 

음악은 늘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오늘도 익숙한 노래 한 곡이 당신의 마음을 잠시라도 가라앉혀주길 바란다.




참고문헌

Juslin, P. N., & Sloboda, J. A. (2010). Handbook of Music and Emotion. Oxford University Press.

Koelsch, S. (2014). Brain correlates of music-evoked emotions.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5(3), 170–180.

Gross, J. J. (1998). The emerging field of emotion regulation: An integrative review.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2(3), 271–299.

Thaut, M. H. (2005). Rhythm, Music, and the Brain: Scientific Foundations and Clinical Applications.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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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31 08: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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