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희 칼럼니스트
청춘, 그 단어만 들어도
화창한 봄날이 연상된다.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청춘은 저마다의 꽃을 피워간다.
한 송이, 두 송이 꽃 피우다 보면,
어느새 청춘의 정원은 개개인을 물들인다.
‘청춘’은 무수한 의미의 집합체이다.
사랑, 행복, 절망, 질투, 고통, 성공…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바로 청춘이다.
우리는 그 수많은 집합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대부분이 성취, 사랑 등
긍정적인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과 인내가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고통을 미화한다.
청춘이기 때문에, 또 청춘이라서
그 고통을 오롯이 견뎌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것이 가득한 사회에서
청춘을 가진 자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마치 도화지에
자신의 초상을 그려가는 것처럼,
모진 일도 초상의 영감으로 삼아
성장할 힘이 청춘에게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수반되어야만
청춘이라 할 수 있는가?
어떤 풍파나 고통을 겪지 않고,
또 겪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청춘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사회의 답은 항상 일관된다.
“그것은 청춘을 제대로 보낸다고 할 수 없어.
그건 사회에서 도태된 루저일 뿐이야”라고.
사회가 정하는 청춘의 기준은 획일적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순서대로 졸업하고,
취직 준비를 통해 회사에 입사하는 것.
그것이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청춘의 과정이다.
입사 후에는 ‘직장인’으로 불리며
청춘이 아닌 또 다른 사회적 직위를 부여받는다.
청춘의 기준이 직장 입사 전과 후로 나뉘는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딘 청춘은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바로 사회생활이다.
어릴 때부터 사회화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지만,
그것과 사회생활은 차이가 있다.
의식주를 위한,
자아 형성 및 교우 관계를 위한 것이 사회화라면,
사회생활은 이미 형성된 자아를 숨기고,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본래 활기찬 성격임에도
조용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의견이 있어도 꾹 참는 것이 당연시된다.
초반에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하지만,
그것이 점차 자신의 모습으로 굳어져
어느새 ‘사회생활에 찌든
획일화된 직장인’ 중 한 명이 된다.
물론 이에 대해
“사회에 잘 융화되려면 당연한 것이 아니냐”,
“그것 또한 성장이고
성숙해지는 과정이다”라고 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에는 틀린 것이 없다.
다름만 존재한다.
누구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현재 사회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기를
청춘이라 칭하면서도,
고통이 있어야 한다고 종용하고,
자신의 자아를 억누르도록 하는 사회가
과연 모순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학창 시절,
장래 희망을 그림으로 그리는 시간이 있었다.
대통령, 선생님, 가수, 자동차 디자이너, 큐레이터 등
무수히 많은 꿈이
도화지 속에서 빛났던 모습을 기억한다.
지금은 어떤가.
지인들과 꿈에 관해 이야기 하다 보면
“꿈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의미한 대화가 이어진다.
눈을 빛내며 자신의 꿈을 그리던 아이들이
초점 없는 눈동자로
“그냥 공무원이나 할까”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사회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홍대에서 길거리 버스킹을 하거나,
자신의 꿈을 찾아 무작정 해외로 떠나거나,
원하는 곳에 취직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는 것,
그 모든 것이 청춘이다.
중요한 것은 청춘의 기준을
사회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춘은 꼭 도전해야 하는 것,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의 지침이 없는
그냥 그 자체로 청춘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거나 백수라고 해서
청춘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원하는 ‘청춘’은
획일화되고 독창성이 없는,
마치 주어진 일만 하는
로봇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
자유를 표방하지만,
그 안에는 내재한 청춘의 표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모순적이다.
“청년 여러분의 꿈을 응원한다”고 말하지만,
취업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된 존재로 간주해
여러 가지 지원제도를 권유한다.
지원제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취업해야지 온전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수많은 청춘이여,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아무것도 몰랐던 도화지 같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마음에서 우러나와 해맑게 웃을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고민을 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의식적으로 강요받는 청춘에게서 거리를 두고,
내가 꿈꾸던 청춘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메마른 청춘 정원에 또 하나의 꽃이 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정해둔 길 재미없어
특별한 오답이 더 빛나
오늘부터 네가 원하는 길 찾아
We are so young
-백현, 로꼬 YOUNG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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