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주희 ]
출처: Pixaby-Gerd Altmann
2021년 5월 군내 성추행 및 2차 가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군내 성폭력 문제는 군 내부를 넘어서서 사회적으로도 큰 악영향을 초래한다. 군대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피해를 입게 된 군내 성폭력 피해자는 다양한 부정적 정서 및 상황을 경험하게 되며, 제대 이후에도 그 고통은 유지될 수 있다. 반드시 근절해야만 하는 군내 성폭력, 그 특징과 더불어 피해자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어떠한가.
군내 성폭력의 특징
군대 내에서의 성폭력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먼저 첫 번째로 위계질서 속 가해자 중심논리가 뿌리 잡고 있어 군에서의 성폭력 행위를 친밀감 혹은 장난 등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권인숙, 2004). 따라서 가해자는 자신의 성폭력 행위를 부정할 기회를 가졌지만, 가해자는 오히려 자신이 예민한 것은 아닌지 자책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군대 내에서의 성폭력이 권력과 통제의 욕구를 바탕으로 남성들의 경쟁 내에서 남성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수단으로서 쉽게 이용된다는 것이다(강동욱, 2012). 이러한 상황에서의 군내 성폭력은 폭력적인 지배 욕구로 인한 행위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성욕으로 인한 욕구라기보다는 권력을 행사하고 수치심, 모욕감을 주려는 욕구로 인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남성 군인들은 남성성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여성화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이 우월함을 확인하고 위치를 확보하기도 하는데, 이때 피해자에 대한 여성화는 성폭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는 남성성이 없거나 심한 손상을 당한 존재가 되며, 이 과정에서 집단심리가 작용하면서 가해자는 자신의 공격적인 남성성과 위계질서를 확인하게 된다. 더욱더 안타까운 사실은 성폭력 피해자가 남성일 경우 자신의 피해 사실을 노출하는 행위를 곧 강한 남성으로서의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여겨 도움의 요청을 꺼린다는 것이며(이미정, 2016), 이에 따라 문제가 방치되어 악순환을 반복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성욕의 해소를 통해 군 복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잘못된 성행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하며(유혜정, 2006), 이러한 고정관념이 강할 경우 성욕을 일탈된 형태로 계속해서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어려운 입장에 놓여있다는 사실, 그리고 구성원 간의 응집력이 강한 군부대 특성상 피해자가 일과를 자율적으로 그만둘 수는 없다는 사실 등은 군내 성폭력 피해자의 심적 고통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군내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과 극복 노력
서동광, 하정희의 「군대 내 성폭력 피해 병사들의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2020)」에서 실시한 군내 성폭력 피해자 대상 면접 내용은 군내 성폭력이 발생하는 환경 및 양상, 그 이후의 경험과 피해회복 노력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피해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할 경우 비난을 받을 수 있으며,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빈번한 환경에서는 피해자가 억압적 분위기에 위축되어서 용기 내어 고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한 연구 참여자의 절반은 군 상담을 신뢰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는데, 피해 소문이 빠르게 전달될 수 있는 군대 내에서의 익명성 보장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다.
참여자 2: “누구한테 밀고하면은. 누구한테 알리거나 하면은. 그니까 가해자가 혼나는 게 아니라 피해자한테 왜 네가 말을 했냐. 이런 특성 아시잖아요. 그래서 말도 못 하고.”
참여자 6: “뭐 마음의 편지라고 하죠. 그런 거를 쓰면 예를 들어서 “OO병장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면 저한테 와요. 그 마음의 편지가. 그니까 가해자를 찌른 편지를 가해자한테 보내요.”
참여자 2: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익명성이거든요. 어떻게 익명성을 보장하느냐. 군대 안에 소문이 되게 빠르잖아요... 상담을 신청하는 군인들이 가장 불안에 떠는 게 내가 만약 상담을 하면은 다른 부대원들이 알지 않을까.”
본 논문에서는 군대 내에서 피해자가 경험한 정서와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면접을 실시했다. 군내 성폭력에 의해서 피해자는 불안이나 무기력감과 같은 부정적 정서로 인해 동기와 의욕이 상실될 수 있으며, 전우에 대한 신뢰 부족과 군 복무 및 일상생활에 대한 동기 저하는 전투에 항상 대비하여야 하는 군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는 문제가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기불안을 경험하기도 하며, 전역 이후에도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관련된 기억들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고통을 겪기도 한다.
참여자 3: “원하지 않는 포르노. 불법 촬영을 당한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그렇게 나를 소비 했구나 이런 생각을. 엄청난 수치심 그건 진짜 기분이 안 좋죠.”
참여자 1: “아 이 인간이 언제든지 나한테 이럴 수도 있겠다. 한번밖에 안 그랬는데도. 아 이 새끼 언제든지 나를 또 만질 수도 있겠네. 사람이 한번이 어렵지 두 번 하는 거는 쉽잖아요.”
참여자 5: “전역하고 나서 한 1~2년 동안은 계속 그 억울함과 화가 엄청 심했었죠. 뭔가를 하고 있으면 그래도 괜찮은데 가만히 있을 때 좀 막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을까? 본 논문에서는 참여자들의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인지적 노력, 행동적인 노력,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적응의 3가지 영역으로 분류했다. 우선 인지적 노력에 따르면 참여자들의 절반 이상이 가해자 혹은 자신의 전역 날을 희망으로 삼아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행동적 노력에서는 9명의 참여자가 주변인과의 대화로부터 위로를 받았으며, 특히 동기와의 대화를 통해 위로받고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응답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참여자의 절반이 운동에 집중함으로서 잡념을 없애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폭력을 통한 고통스러운 감정이 서서히 나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참여자 8: “개인적으로 힘든 게 있거나 하면은 동기들한테 얘기하면 동기들도 같이 얘기하고 하면서 많이 풀렸거든요. 동기가 좀 많이 중요한 것 같아요.”
참여자 2: “운동하면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운동하면 또 운동이 힘들어서 짜증 나는데 그래도 아무 생각이 없어지니까 그게 되게.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거 자체가 좋죠.”
군내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는 전역 이후에도 분노, 무기력, 수치심과 같은 다양한 부정적 정서 경험을 하며, 인간관계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주변인과의 대화 및 신체활동 등은 피해자의 심리적 회복을 돕는 요소이며, 군대 내에서 비밀보장을 신뢰할 수 있는 상담 공간은 피해자의 심리적 문제 완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내 성폭력 재발 방지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제도의 정비라고 보며, 군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제도 및 노력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출처>
1. 서동광, 하정희. (2020). 군대 내 성폭력 피해 병사들의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2. 구원근. (2021). 육군 내 일탈행위 방지를 위한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의 적용방안 연구. 한양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3.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것들, 2003, pp.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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