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여정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임여정 ]
흔히 옷장을 보면 한 사람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알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 옷장은 다양한 스타일과 사이즈가 혼재하는 거대 구덩이다. 대학교 1,2학년때 옷을 너무 많이 산 탓에 유행 지난 옷들이 빼곡하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타이트한 대학생 생활비용에 뭐가 좋다고 식비까지 줄여가며 옷을 샀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남아있는 돈은 없다.
이 많은 테니스 스커트는 어디서 왔을까? 과거에 나에게 물어본다면, 한번 먹고 사라지는 음식보다는 계속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남아있는 게 좋았다. 식비는 줄이고 옷은 많이. 그렇게 대학교 신입생 시절 인생 최저의 몸무게로 최고로 다양한 옷을 입으며 보냈다. 옷을 너무 좋아한 탓에 부모님은 내가 패션 업계로 취직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과소비가 일종의 자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엔 소비가 일종의 자해행위일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소비가 자해라고? 이런 자해라면 괜찮지 않아? 경제가 돌아가는 데 도움도 주고 남한테 피해도안 끼치니까. 게다가 옷은 음반이나 피규어나 인형이나 우표보다 훨씬 실용적이잖아.'라며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런 건 재벌 2세들이 명품을 살 때나 해당하는 것일 거라고, 나 정도 식비를 줄여가며 옷을 사는 것 즈음은 자해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심리학 학술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의 논문 "우울한 사람은 구두쇠가 아니다(Misery Is Not Miserly)"에 따르면, 인간은 우울할수록 쇼핑 과몰입 상태에 빠지기 쉽고 한다.
불행한 사건이 닥쳤을 때 오는 부정적인 기분은 자신을 평가 절하하게 만든다. 인간은 우울할 때 자신의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느끼기 쉽고, 쇼핑은 무언가 소유한다는 점에서 무너진 자존감을 즉각적으로 회복하기 쉬운 방법의 하나다. 손상된 자아의식을 물건을 사고 무언가 가짐으로써 회복하려는 심리다. 다시 말해 우울해진 마음에 대한 보상 심리로 돈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옷장 속 그 많은 테니스 스커트는 결핍에서 왔나 보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느라 쉬지 못하는 나를 위한 보상심리로 옷을 모았다. 옷장 속 유행이 잔뜩 지난 옷더미를 보고 지난날의 나는 조금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풍성하지 않으니 소비를 통해 헛헛한 마음을 채우려고 했나 보다.
심리학자들은 "보복 소비"를 설명하며 올바른 소비 습관을 기르는 근본적 해답은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적 불안감이 높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태에서 소비를 통해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보복 소비는 충동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주대학교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우울한 상태에서 소비가 증가하게 되는 원인으로 "자기 초점"을 꼽는다.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든 채 혼자 있는 기간이 길어진 상태에서 지나치게 자신에 대해 집중을 하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우울할 때는 자신의 부족과 결핍에만 집중하기 쉬우며, 객관적이지 못한 시야로 물건을 예상보다 과하게 소비하며 나에게 보상을 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경일 교수는 물건을 사며 헛헛한 마음을 채우고 싶을 땐 주위에 "이 옷 어때?" 혹은 "이 물건 어때?"라고 물으며 주위의 객관적 시선을 요청해 볼 것을 권한다. 혹은 가격표에 할인율을 보기 전 “이 옷은 얼마면 산다”라는 자신만의 가격 상한선을 정해두는 것이 홧김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편 결핍된 마음을 채우기 위한 행위로 과한 소비 이외에도 입에 음식을 잔뜩 몰아넣는 과식이나 잦은 캐쥬얼한 섹스도 자신도 모르게 범하기 쉬운 자해행위라고 한다. 어떠한 것도 근본적인 마음의 허기를 달래 줄 수는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종종 다시 옷을 사고 싶다. 그럴 때면 친구들과 일정을 공유할 수 있는 스케쥴러 어플에 들어간다. 오늘 할 일에 "끝내주게 밥 먹기", "낮잠 안 자기", "산책하기", "물 1L 마시기" 등의 계획을 적어 놓고 계획을 실행하면 친구들에게 칭찬 이모티콘을 받을 수 있는 앱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에 대한 칭찬을 통해 스스로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오늘 할 일에 “쇼핑하기”를 적어두면 친구들의 아낌없는 조언이 따라온다. 이런 친구들의 객관적인 조언은 단순 경제적 출혈을 막아주는 것을 넘어 신중한 구매를 통해 나만의 옷 스타일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고 싶다면 이처럼 일상 속 작은 계획을 실행한 후 나에게 칭찬을 해 주는 것은 어떨까? 작은 계획을 실천한 나는 앞으로의 계획까지 해낼 추진력을 가진 대단한 사람이니 말이다.
<참고자료>
매일경제, 돈쓰며 외로움 잊는 사람들 대화 자주해야 돈 적게 쓴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Psychological Science, Misery Is Not Miserly, Sad and Self-Focused Individuals Spend More, Cynthia E. Cryder
헬스조선, 코로나의 그늘'보복 소비'....우울한 마음 살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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