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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우지연 ]


                                              


“잘 지내.” 

그러자 꽃은 기침을 했다. 하지만 감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윽고 꽃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어리석었어. 날 용서해. 그리고 행복해야 해.” 

웬일인지 꽃이 투덜거리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놀라워서 어린 왕자는 유리 덮개를 손에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갑자기 조용하고 부드러워진 꽃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Le Petit Prince)』 중 -


 『어린왕자』 속 장미꽃은 처음 어린 왕자를 마주했을 때, 마치 그를 좋아하지 않는 듯 까칠하게 말을 건넸다. 가시 돋친 말들은 장미꽃이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게 했지만, 작별 인사를 할 때 보인 서툰 표현에서 장미꽃의 진심이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을 좋아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건 두려워”



 아마 장미꽃의 마음을 한 줄로 요약하면 위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장미꽃은 좋아하는 상대에게 그리 까칠하고,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걸까. 『어린왕자』 속 장미꽃에게 잠시 생명을 부여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착’에 있을지 모른다. ‘애착 이론’을 제시한 볼비(Bowlby)에 따르면, ‘애착’은 ‘영아기에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형태의 사회적 발달이자, 영아와 양육자 간에 형성되는 친밀한 정서적 결속(두산백과)’을 의미한다. 


 Bartholomew와 Horowitz(1991)는 볼비(Bowlby)의 이론에 기반하여 4개의 애착 유형 - 1)안정형(자기 긍정-타인 긍정) 2)회피형(자기 긍정-타인 부정) 3)몰두형(자기 부정-타인 긍정) 4)두려움형(자기 부정-타인 부정)을 제시했다. 각 유형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1) 안정형 애착을 가진 개인은 어렵지 않게 타인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 본인이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 혹은 타인이 본인에게 의지하는 것을 편안하게 수용한다. 

 2) 회피형 애착을 가진 개인은 타인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며,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타인이 본인에게 의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3) 불안형 애착을 가진 개인은 타인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기를 원하지만, 타인은 본인의 원하는 만큼의 가까운 관계를 본인과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버림받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 

 4) 두려움형(혼란형) 애착을 가진 개인은 본인과 타인 둘 다에 부정적이며,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타인과 가까워질 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거리를 두고자 한다. 


 일관되고 지속해서 자녀에게 적절한 반응을 보인 부모의 양육 아래 성장한 아동은 안정형 애착을, 비일관적인 반응 및 부적절한 양육 태도를 보인 부모의 양육 아래 성장한 아동은 불안정형 애착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라 볼 수 있는 애착 유형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개인의 교우관계, 연애 방식을 포함한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진미경(2013)에 따르면, 안정형 애착을 가진 집단은 자기중심성, 냉담 등의 영역에서 불안정형 집단보다 평균이 유의하게 낮았고, 대인관계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개인의 애착 유형은 연애 방식과도 상관관계를 가진다. 이윤영과 전효정(2009)에 따르면 회피의 경향이 높을수록 계산적인 사랑을 하고, 불안의 경향이 높을수록 계산적이고, 집착적이며, 우정적인 사랑을 한다고 밝혀진 바 있다. 


 나는 『어린왕자』 속 ‘장미꽃’의 심리가 ‘두려움형 애착’을 가진 이의 심리와 매우 닮았다고 생각한다. 본인 몸에 돋친 가시처럼 날 선 말을 하며 어린 왕자를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추후 그가 작별인사를 건네며 본인을 떠나려 하자, 그제서야 장미꽃은 어린 왕자에 대한 애정과 작별이 서글픈 본인의 속마음을 서툴게 꺼내 보였다. 상대가 좋았지만 그 마음을 숨기려 애쓰고, 상대가 떠나는 것이 슬펐지만 그 마음 역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장미꽃의 모습은 사실 많은 이들이 직면했을 우리의 미숙함과 닮아 있다. 

 


"상처의 기억은 가시를 남긴다"



 ‘두려움형 애착’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상처,상실의 기억은 우리의 마음, 말, 시선에 뾰족한 가시를 심도록 종용하곤 한다. 어른이 될수록 어느새 늘어나버린 가시들은 우리로 하여금 신뢰보단 경계를, 개방보단 침묵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나 역시 애정을 망설임없이 표현하는 어린 아이들과 대조되게, 방어적인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현재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성인이 된 우리는 장미꽃과 같이 적나라한 진심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적지 않은 이들의 마음 속 심해엔 ‘소중한 이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표면적으론 문제를 촉발시키지 않는다 해도, 소중한 상대와의 ‘지금’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여정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애착관계는 혈연을 전제하지 않는다”


 

 위는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p.244에 나와있는 구절이다. 본 책의 저자, 김준기는 영화 ‘자전거 탄 소년(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감독의 작품)’ 속,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고통스러워하는 ‘시릴’이 일관된 따뜻함을 보여준 ‘사만다’와의 관계 속에서 본인의 트라우마를 서서히 회복해갈 것이라 말했다. “결국 가족밖에 없더라.”라는 그 흔한 말과 달리, 당신의 치유에 매개체가 될 상대는 꼭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예민함’이라는 나의 가시가 너무도 싫었다. 이로 인해 생겨난 내 협소한 취향이, ‘쿨’하지 못한 내 모습들이 부끄러웠다. 대야를 꿈꿨지만, 사실 종지 그릇에 불과했던 나의 포용력을 직면한 뒤 우울감에 빠져들던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그래도 네가 좋아.”

 

 나 스스로 느낀 예민함에 대해 굳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예민함의 그늘 뒤에 따라온 세심함이, 많은 생각이 좋다고 말해 주었다. 덤덤하게 내 앞에 놓아진 친구의 말 한마디는 두고두고 나의 자책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부적이 되어 주었다.




나도 모르게 생겨나버린 가시들로 인해 괴로운 당신에게”



 우리를 초라하게 만드는 가시들이 밉고, 거슬릴 때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당연하고 정당한 감정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 역시 자주 느끼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가시 역시 나름의 사연과 맥락이 있었기에 돋친 것이고, 사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음을 참작해 조금은 안쓰럽게 바라봐 주는 것은 어떻겠는가. 

 

 열은 열로써 다스리라 조언하신 선조들의 말씀처럼, 관계에 대한 상처 역시 관계로써 치유될 수 있다. 당신의 안전지대는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선생님일 수도 있다. 나 다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편안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자아를 수용할 용기와, 두려워하지 않고 소중한 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건강한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참고 문헌]

1) 진미경 ( Mi Kyoung Jin ). "대학생의 성인 애착과 대인관계문제 및 이성관계에 대한 연구." 한국놀이치료학회지(놀이치료연구) 16.4 (2013): 285-300.

2) 이윤영,and 전효정. "대학생이 지각한 부모양육태도, 성인애착유형과 사랑유형." 한국가족관계학회지 14.2 (2009): 99-121.

3) [네이버 지식백과] 애착이론(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52031&cid=40942&categoryId=31531

4) 김준기. (2021).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수오서재 

5) 생텍쥐페리. (2012). 『어린왕자』. 박성창 옮김. 비룡소

6) 이미지 출처 : Pixabay 




덧붙이는 글

부족함 많은 제 첫 기사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늘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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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30 09: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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