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원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재원 ]
“우리 아이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할까요?”
영어유치원에 대한 질문은 맘카페와 학부모 모임에서 마르지 않고 나오고 있다. 유명한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레벨 테스트를 봐야 하고, 아이가 시험에서 통과하더라도 대기 줄을 서야 한다. 아이를 유치원에 합격시키기 위해 과외를 시키거나 족보를 사기도 있다.
왜 이렇게까지 영어유치원에 집착하는 것일까? 당연히 영어 실력이 중요한 글로벌 시대인 만큼 아이가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고, 특히 영어는 일찍 배울수록 잘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언어를 늦게 배울수록 오래 걸린다는 말은 이제는 거의 상식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내용이 퍼진 데에는 에릭 레너버그가 주장한 ‘결정적 시기 가설’이 큰 역할을 했다. 결정적 시기 가설에 따르면 어렸을 때의 특정 시기가 지나면 외국어를 모국어나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언어를 담당하는 뇌와 뉴런의 발달은 어린 나이일 때 급격히 발달하기 때문에 아동 시기의 언어 학습이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 있다 보면 영어유치원을 다녔다고 했지만, 막상 영어 실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또는 영어와 한국어 모두 잘하지만 깊이 있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즉, 영어를 일찍 배운다고 무조건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조기교육은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학에선 영어조기교육을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영어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모국어도 같이 발달시켜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뇌가 발달하면서 배운 모국어는 사고의 기반이 된다. 이 시기에 형성된 국어의 깊이가 앞으로 모국어로 된 책을 읽고 자국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아이들의 뇌는 국어 하나만 습득하기에도 할 일이 매우 많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영어까지 함께 배우게 한다면 영어와 한국어가 서로 충돌한다. 그 결과 두 언어 모두 제대로 습득하지 못할 수 있다. 모국어나 외국어나 전두엽 및 측두엽의 언어중추는 거의 같다. 그래서 두 언어에 동시에 노출되면 서로 충돌해서 학습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크다. 불균형적인 학습으로 인해 영어와 모국어 둘 다에서 뒤처지게 된다면 앞으로의 아이의 교육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어릴 때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못 할 것이라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심리학계에서 결정적 시기 가설을 반박하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지신경심리학 연구에서는 습득 연령보다는 외국어에 대한 능숙도가 학습에 더 결정적이라고 보고했다. 따라서 몇 살 때 배울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학습할 환경을 제대로 조성하고, 아이 스스로 동기를 갖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칭찬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모국어 하나만 잘 배워도 칭찬받아야 할 나이에, 두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질책받는다면 아이는 오히려 영어에 대해 공포심이 생길 것이다. 언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고, 자신감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아이의 삶에 더 큰 독이 될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영어에 많이 노출되도록 하기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언어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도록 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부족한 근거로 발생한 영어유치원 열풍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출처
[1] 두정엽·측두엽 발달에 따른 학습. [쿠키뉴스]. (2017). URL: http://kukinews.com/newsView/kuk201709290216
[2] 남기춘. (2008). 인지심리학과 외국어 학습. 한국심리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2008(1), 412-413.
[3] 이성은. (2012). 제2언어습득에 대한 신경언어학적 고찰. 독일어문화권연구, 21(0), 127-157.
[4] 이재욱&남기춘. (2001). 한국어 학습자의 어휘학습 전략 연구. 우리어문연구, 17, 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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