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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재원 ]



 언어심리학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하게 다가오는 분야일 것이다. 언어 규칙이나 구조, 효과적인 언어교육 방법 등의 주제는 오랫동안 다뤄졌지만, ‘언어심리학’은 대략 19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되었기 때문에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심리학은 항상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 다른 학문이 언어 자체의 규칙이나 학습 효과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면, 심리학은 언어를 사용할 때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자 한다. 따라서 언어심리학은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원리를 알면 결과가 보인다. 따라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어떻게 해야 언어를 잘 학습할 수 있을지를 추론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10,000시간의 법칙’ 역시 언어심리학으로 분석할 수 있는 소재이다.

 


10,000시간의 법칙: 언어 학습의 기반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0,000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언어, 학문, 운동 등 어느 분야에서든 적어도 10,000시간 동안 노출되고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10,000시간은 하루에 10시간씩 공부한다면 대략 3년이 걸리는 시간이며, 하루에 2시간씩만 공부한다면 약 13년이 걸린다. 이처럼 반복하는 기간이 긴 만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학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1달 단기 특강만으로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영어 실력이 급격하게 늘 수는 없다.

 

 그러면 10,000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서 반복 횟수는 당연히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를 같은 것만 여러 번 다시 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단어장을 10번 반복해서 읽는다고 해서 어휘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어끼리의 관계나 발음의 유사성 등 언어의 여러 속성을 상호연결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psychology는 심리학을 뜻한다고 반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psychology는 biology처럼 –logy가 붙어있구나”, “psych-가 붙은 단어들은 정신과 관련 있네” 등 여러 생각을 해야 10,000시간의 효과가 나타난다. 단어장을 몇 회독했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얼마나 정교하게 연습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처음 보는 문장을 들어도 새로운 연결을 적용할 수 있고, 자동적으로 단어의 뜻이 떠오를 수 있다.


 

외국어 초보는 해마가 관여하지만, 능숙할수록 해마가 관여하지 않는다.

 10,000시간의 연습은 뇌를 변화시킨다. 처음 외국어를 배울 때에는 단어의 뜻을 기억해내고 외운 문법을 사용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학습을 하는 경우, 정보는 ‘해마(hippocampus)’를 거쳐 각 뇌 영역으로 전달된다. 해마는 자신이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이 단어는 여기에서 찾고, 저 단어는 저기에서 찾고, 문법은 이쪽에서 찾으라는 명령을 한다.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하면서 해당 언어에 익숙해진다면 해마의 활동은 점점 줄어든다. 대신 뇌의 영역들끼리 서로 강하게 연결된다. 뇌의 각 영역들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이 초보일 때에는 해마에 의해 연결되었다면, 전문가가 된 이후에는 해마 없이도 바로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암묵적으로, 자동적으로 말을 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아이일 때에는 정교한 연습 없이도 언어를 빠르게 학습한다. 뇌가 완전히 조직화되지 않았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언어에 자주 노출되면 암묵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억에 의존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인은 다르다. 성인은 이미 자신의 모국어에 맞게 뇌가 다 변화한 후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새롭게 배우려면 의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학습 초기에는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기억에 의존한다. 하지만 수많은 반복을 거듭할수록 뇌가 변하면서 자동적으로도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효과적으로 영어를 배우려면?



 언어는 언어학적 지식과 언어심리 정보처리 기술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언어학적 지식은 각 단어의 뜻이나 문법 정보 등을 말하는 반면, 언어심리 정보처리 기술은 자동적이고 암묵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인데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지식은 잘 알고 있지만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언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지식과 기술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진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이러한 기술을 얻으려면 어떤 방식을 써야 할까? 인지심리학에서 소개하는 학습 방법들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Emerging Property’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여러 개의 영어 문장들을 최대한 암기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문장을 외우면 그 속의 공통된 속성들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문법을 저절로 익히게 된다. 마치 어린아이가 문법을 몰라도 옳은 문장을 말하는 것처럼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모국어와 분리된 영어의 학습 방식 자체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psychology’를 읽어보라고 했을 때, 한국어에만 익숙한 사람은 /psy/cho/lo/gy/ 와 같이 음절 단위로 나누어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어는 음절 단위로 말하고 읽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는 음절보다는 억양과 강세가 중요하므로, 한국식으로 읽으면 발음이 정확하지 않거나 잘못 읽을 수 있다.


 또한, 영어 단어를 한국어 뜻으로 1:1로 연결지어 외우다 보면, 다른 맥락에서는 해석을 잘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다루는 구조를 따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즉, 영어를 한국어로 바꾼 후 이해하기보다는 영어 자체를 그 단어의 의미나 개념과 직결되게 외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언어는 매우 복잡한 심리 체계이다. 원래 언어는 일생 동안 하나만 배우는 것이 일상적이었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두 언어를 배우다보니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제 2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선 10,000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어심리학은 사람들의 언어 학습에 도움을 주고, 언어 사용의 원리를 밝혀 여러 분야에 적용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앞으로 언어심리학이 더욱 발전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며 기사를 마친다.

  


*해당 기사는 고려대학교 언어심리학 전공인 남기춘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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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11 07: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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